문희주의 디카시 오롬스토리

몽골어 설(СӨЛ), 중국어 진설하다는 뜻의 설오롬

쿠노Koonoh 2023. 7. 21. 21:57
 뉴제주일보 승인 2023.07.20 18:43
 

서귀포시 표선면의 오롬 부자인 가시리에서 성읍리 방향(남쪽)으로 나가는 곳에 설오롬이 있다. 가시리 지경에는 탐방로가 잘 정비된 오롬들인 서귀포시휴양림 붉은오롬(비고 129m)과 갑마장의 두 축인 대록산(비고 125m)과 따라긴/따라비오롬(비고 107m)이 있고 유채꽃 큰 잔치가 열리는 반널오롬(비고 62m)·병곳오롬(비고 113m)과 마을 가까이에 갑선이오롬(비고 83m)도 있다.

설오롬은 가시리 마을 안에서 가까운 곳인데 탐방할 길은 있으나 탐방 시설인 매트·계단·로프·화장실·주차장 등의 시설도 없다. 그런데도 다른 오롬에 없는 모노레일이 가파른 비탈에 설치된 것은 이상한 일이다. 상록수가 늘어선 가파른 길을 오르니 그것은 제물을 실어 오르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설 오롬은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의 용도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이 지역의 식수를 공급하는 정수장이 있다. 과거에는 설오롬 세미가 지역의 식수나 제사에도 쓰였다는데 지금은 이 지역 마을들의 식수를 공급하는 정수장이 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닌지 모른다. 또 하나는 이 오롬은 마을 포제가 열리는 신성한 곳이다. 오롬 남쪽에는 큰 바위들이 성처럼 둘러 있어서 옛 사람들의 하던 말이 떠 오른다. ‘돌은 낭(나무)의지 허곡, 낭은 돌 의지헌다’ 돌과 나무가 서로를 의지하고 동백나무 아래는 제단 삼았던 곳도 있다.

이 곳 마을 포제는 북쪽을 향해 제단 삼았다면 좌(아래)쪽으로는 삼나무 숲이고 동백나무 위로 올라서서 동쪽을 향하면 산불 감시초소가 보인다. 오롬 등성이 길에는 거의 제주산 곰솔이고 동백나무 제단 서쪽으로는 제주산 상록수들이 가득하다. 엉클어진 숲을 헤치고 나오면 지금은 큰 길을 뽑는 중인데 어쩌면 필자도 그 길이 아니었다면 한 참 숲속을 헤맸을 것이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동북쪽으로 조금 더 오르면 쇠멍에처럼 양쪽으로 굽어 있는 이 오롬 동북 정상에 이르게 된다. 이 곳이 바로 이 오롬에서는 유일한 조망처이다. 여기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갑선이오롬, 북쪽으로는 영루(영주)오롬·따리긴오롬이 보인다. 그러나 서쪽으로는 나무에 가려서 번널오롬·병곳오롬·한라산은 숲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어떤 책에서 설오롬의 어원을 살펴보면 ‘오롬의 모양이 호미를 닮아서 ‘호미 서(鋤)’를 써서 ‘서오롬이라 하다가 설오름이 되었다’고 전해지나 이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본래 설오롬이던 것을 이후 한자로 표기할 때 호미 서(鋤)를 사용하여 음차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몽골어에서 ‘설(СӨЛ)’이란 발음은 몽골어 사전에서는 명사로 ‘가을의 푸른 풀’이란 뜻으로 이 말의 용도는 ногооны~가을의 푸른 풀. ~ тасрах 풀이 다 마르다. ~ 가을의 푸른 풀을 따라 이동하다. 나이가 젊고 풀이 푸를 때(힘이 있는 젊은 날)를 말한다. 몽골인들은 제주에 와서 가을을 맞아도 변함없이 푸른 이 오롬을 보며 ‘설!’이라고 외쳤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어 사전에서 설(設)은 베풀다·진열하다·진설하다·세우다·일을 차리어 벌이다·도와 주어서 혜택을 받게하다·설립(設立)하다·갖추어지다·온전(穩全)하다·주연(제사·연회)를 벌이다는 제사용어로 진설(陳設)하다’라고 하며 이는 ‘제사·잔치 때, 상 위에 음식을 법식에 따라 차림이나 제물을 배설(排設)하다’는 뜻이다. 늘어놓을 진은 ‘늘어놓다·자리를 펴다·널리 깔다’는 뜻이다.

설오롬은 지금도 연초에는 가시리 주민들의 함께 모여서 마을 포제(酺祭)를 지내고 있다. 포제란 연회 포(酺)자로 ‘연회, 귀신 이름, 재해(災害)를 내리는 귀신을 말하며 제사제(祭)는 ‘제사 지내다·사귀다·사람과 신이 서로 접하다’라는 뜻이다. 포제를 지낼 때는 통돼지를 제물로 드리고 제사 후에는 제사에 올렸던 돼지고기와 돌레떡·막걸리·감주 등을 함께 나누어 음복하였다. 이런 뜻에서 볼 때 ‘설’이란 오롬의 어원은 지금도 가시리 주민들이 포제를 드리는 입장에서 볼 때 제주어로 보인다. 이는 제주도 사람들의 샤머니즘을 어쩌면 몽골인들도 가시리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을 몽골어로 음차하여 불려진 것으로 이해된다. 즉 몽골인들이 이민 오기 전부터 제주인들은 이미 이 오롬에서 포제라는 샤머니즘의 방식으로 제사를 지내오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 오롬을 ‘설오롬’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이 오롬을 표기할 때 ‘호미 서(锄)’자를 써서 표기한 이후, 이 오롬이 ‘호미(제주어:골갱이)를 닮아서 서(锄)오롬이라 한다’는 말은 잘못된 해석이다. 설오롬은 서오롬이 아니다. 전혀 제주호미를 닮지도 않았고 오히려 ‘쇠멍에’를 닮았다. 상록수와 낙엽수, 넝쿨과 가시가 어우러진 설오롬처럼 제주어·만주어·몽골어·한자어로 뒤엉켜진 오롬의 이름과 유래를 풀어나가는 것이 곧 오늘 우리의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