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로새서 2장 7절)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하는 삶은, 그리스도인의 기본 명제이자 목표입니다. ‘믿음’ 없는 그리스도인이란 있을 수 없고, ‘감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죽은 것입니다. 역으로 표현하여, 그리스도인이 없거나 그리스도인이 죽은 상태에 있다면, 참된 의미에서 세상에 희망이란 아예 없는 것과 같습니다. 철학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이 세상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과 상치합니다. 영적인 싸움이 매우 힘든 현장이지만, 그리스도 십자가의 권능은 모든 세력을 능히 제압합니다.
사람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믿고 그 안에서 행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렇게 살지 못하도록 사탄은 대적 행위를 끈질기게 이어갑니다. 철학과 속임수는 감당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대적 행위입니다. 철학은, 좁은 의미에서 학문의 한 분과이지만, 본질적인 넓은 의미로는 생각과 지식을 운용하는 지성을 뜻합니다. 그리고 속임수는, 자기를 방어 보호하려는 불의한 방법의 지성입니다. 결국 철학과 속임수는 서로 악수하는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철학이 필요하지만, 속임수와 밀착한 지성의 힘 때문에 미혹(迷惑)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에 굳게 선다면, 올바른 판단으로 의연히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확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헛똑똑이’가 되지 않습니다. 똑똑한데 올바르지 못한 사람을 두고 헛똑똑이라고 부릅니다. 철학 즉 지성의 역량이 풍부한데도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대학도 나오고 석사나 박사가 되어 남들의 우러름을 받기도 하였으나, 주관과 식견이 분명치 않고 판단을 그르친다면 그는 헛똑똑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의 삶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돈도 많이 벌었고 유명해지기도 하여, 소위 잘나가는 인생을 보냈으나, 예수 믿음의 지성이 없는 이는 명철과 지혜의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 성령의 감동과 충만으로 명철한 지성의 삶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육신을 지닌 보통 사람이면서도 영으로 새로워진 사람입니다. 그는, 완전히 리모델링 된 건축물에서 지내듯이, 새롭게 달라진 환경을 경험하면서 살아갑니다. 즉, 겉에서 보기와 속이 다른 사람인데, 그리스도인의 겉과 속은 소생하는 힘을 유기적으로 나타냅니다. 과거에는 범죄와 무할례(無割禮)로 영혼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육체도 영혼의 죽은 상태를 표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그리스도 성령에 의한 세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가 장사(葬事)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새로이 일으킴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믿음의 의미와 효과가 이렇게도 명료합니다.
풍부한 학력과 지식의 지성인일지라도 그가 지닌 철학의 배경 때문에 그의 영혼이 새로워지지는 못합니다. 죄의 어두운 그늘 가운데 놓여 있는 한 헛된 속임수에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꾀에 속아서 삽니다. 욕심은 어리석게도 자신을 속게 만듭니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서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곧 예수 십자가를 따르는 믿음의 길임을 알기 바랍니다. 예수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모욕과 수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를 괴롭힌 자들은 세상의 통치자들과 권력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무력화하고 십자가로 이기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힘입은 자가 그리스도인이므로 감사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도 세상에서 학문과 지식을 위해 당연히 노력해야 합니다. 철학의 지성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반드시 세워야 합니다. 믿음은 새로워진 속사람의 바탕으로서 거기에 부활 생명이 들어 있습니다. 죽었던 영혼이 새로움을 얻었으니, 감사할 것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바울 사도는,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라고 당부했던 것입니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고상하며 찬란한 인생은 없습니다.
(2022년 11월 13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