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설교

그를 내려 던지라

쿠노Koonoh 2020. 5. 17. 15:41

이르되 그를 내려 던지라 하니 내려 던지매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더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 (열왕기하 933)

 

하나님은 사랑을 주시면서도 공의를 엄격히 행하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을 바라지만, 공의를 중시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정의이신 하나님을 사람에게 실행으로 적용하는 것이 공의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공의는 사람에게 심판으로 작용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기 원한다면 공의를 존중하는 자세로 믿음을 지켜야합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비참한 죽음을 봄으로써, 우리는 놀랍도록 엄격한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멸망을 목적하지 않고, 정의의 실행을 통한 구원을 목적합니다.

 

아합(Ahab, BC876~854 재위)은 분단된 북조 이스라엘의 여섯 번째 왕 오므리 Omri의 아들로서, 일곱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왕상16:28) 그는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였습니다.(왕상16:30) 아합의 아내 이세벨 Jezebel은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로서, 바알을 섬겼고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엘리야마저 죽이려고 했습니다. 아합을 위하여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으려고 거짓 증인을 세워 모함하여 그를 돌에 맞아 죽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둘을 죄 대로 공의롭게 처벌하여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객관적으로 공정하지만, 사람에게는 무섭고도 비참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정하고 실행하는 사법권에는 엄격성과 아울러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사법의 엄격성은 공정한 이행을 요구하고, 인정과 상황에는 융통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양자의 적용이 법관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실행에는 하자나 착오가 전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그러하심을 볼 줄 아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잘못에 대한 공정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이 믿음의 정당한 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여주는 것은 사랑과 공의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고 聖子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성자로서 임무가 무엇인지 예수님은 알고 계셨으나, 십자가 죽음의 고통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마의 땀방울이 피가 되도록 그는 고통스럽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공의의 실현으로 사랑의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원했던 것이 예수님의 결론이었습니다. 그게 곧 십자가의 도리입니다.

하나님은 아합과 이세벨의 처벌에 예후 Jehu를 사용하셨습니다.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은 하나님의 손에 속해 있고 섭리의 실행에 모두 동원됩니다. 자유의지의 인간이 누군가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강하고 멋있는 것처럼 남에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약하고 쇠해져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연히 운명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일 뿐이라고 변명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생각을 바꾸면 모든 게 이해되고 새로워질 텐데, 왜 그렇게 오기를 부리는지요?

예후 Jehu는 아합 왕의 군대 장관이었고 아합의 아들 요람 왕의 신하였습니다. 예후는 아합의 아들 70명과 요람을 죽였고, 이세벨도 창밖으로 던져져 비참히 죽게 하였습니다. 오므리 가문의 서글픈 상황은 엘리야를 통한 하나님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결과였습니다. 자기편 신하인 내시들에 의하여 창밖으로 던지진 이세벨을 장사하려 했을 때, 두골과 발과 손 외에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익을 위해 시류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생리입니다. 勝機를 잡은 예후의 세력을 알고, 이세벨의 악행을 보았던 그들은 主君을 여지없이 배반했습니다. 세상과 역사는 하나님의 공의로 그처럼 엄격히 다스려집니다.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그 시체가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라.” 사탄의 도구로 사용되지 말고, 성령의 쓰임을 받는 예수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0517,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