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주의 디카시 오롬스토리

시근이는 빽빽한 가시나무숲의 몽골어 시구운(ШИГҮҮН)

쿠노Koonoh 2024. 6. 14. 19:49
뉴제주일보 승인 2024.06.13 18:21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 1450번지 일대에 시근이오롬이 있다. 중산간동로에서 덕천리 남4길 시멘트 농로를 따라가면 명패(비석)도 탐방로도 없는 오롬 하나를 만나게 된다. 시근이오롬이다. 해발 286m, 비고 45m, 둘레 1.335m, 면적 139,259㎡, 저경 478m으로 주위의 어대오롬(455m), 주체오롬(47m), 뒤굽은이오롬(416m), 당오롬(459m)의 저경과 비슷하다.

필자는 지난 몇 년 동안 시근이오롬을 탐방했지만 시근이오롬의 유래가 궁금했다, ‘시근’이란 근본이 되는 원인(始根), ‘시근거리다’의 어근, 광석 속에 섞여 있는 금의 분량, 새나 박쥐 따위에서 날개를 움직이는 근육(翅筋), ‘철’의 사투리=試根, ‘시근이 없다’라는 어구도 있는데 이는 경상도 사투리로 흔히 어른들이 철없이 행동하는 아이들을 나무랄 때 많이 쓰이며, 경상도나 제주도에서는 찬밥을 식은밥이라고도 한다.

‘시근이’란 이렇게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는데 제주도가 출간한 ‘제주의 오름’이나 ‘제주의 오름 368’은 김종철의 ‘오름 나그네’ 책과 다르지 않았다. “어느 지관(地官)이 시근이오롬을 지나가며 이 산은 맥이 식었다(死地).” 하여서 ‘식은이오롬’이라는데 사실 필자도 덕천리에 사는 노인들이나 이웃 마을 노인들에게 똑같은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시근이 오롬의 유래에 동의할 수 없었다. ‘정시(지관地官)가 “오롬의 맥이 식었다”해 이 오롬에는 예부터 묘를 쓰지 않다는데, 사실 동북쪽에는 20여 년 전쯤 단 한 기의 묘지가 쓰였다. 묘지는 비석이 말하는 법인데 묘는 잘 다듬어 있는데 비석이 없으니 이 지경이 어딘지, 망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필자는 이 오롬을 수차 탐방하며 그 명칭의 유래를 찾고자 하였다. 그러던 중에 최근 들어서 몽골어 사전에서 이 오롬의 지명을 유추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았다. 이 오롬은 몽골어 형용사인 ‘시구운(ШИГҮҮН)’인데 ‘치밀한·꽉 들어찬·밀집한·빽빽한’이라는 뜻이었다.

필자는 이 오롬을 탐방할 때마다 나무들이 꽉 들어찬 빽빽한 밀림에 ‘오싹’하였다.그중에 크고 제일 많은 나무가 가시나무들이다. 가시나무는 남반부의 상록참나무로 제주도와 한반도 남쪽 섬 지역에 분포한다. 제주도에는 육지와 같은 낙엽수인 낭(참나무)들도 있으나 구좌읍 손지오롬에는 상록 가시나무 숲도 있는데 특히 이곳 시근이에 많이 분포하고 있었다.

탐라 동아막 좌면(구좌·신좌=조천) 지경은 몽골이 제주 침략 후 일본 정벌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그래서 군함 재료인 가시나무를 벌채하던 곳 같다. 제주인들은 가시나무로 도구리(한국어 함지박)·솔박·작박·살레(찬장)·마루판 등의 재료로 쓰였다. 필자의 집에도 새마을 사업 후 가시나무 마루판을 걷어내고 나왕 마루판을 갈며 가시나무 마루판은 사라져 버렸다.

제주인들이 많이 쓰던 가시나무는 조선(造船·배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이 오롬을 ‘시구운(ШИГҮҮН)’이라 하여 출입을 금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뜻을 가진 두-레흐(ДҮҮРЭХ)나 락트(НЯГТ)라는 말도 있었다. ‘두레는 조합과 같은 공동체, 락트(НЯГТ)는 몽골인들이 이민 올 때 제주도를 ‘낙토’로 여겼기에 궂이 ‘시구운’이란 말을 사용하였는데 이 말이 ‘시권이→식은이’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필자는 ‘시근이’라 부름이 옳다고 본다.

그렇다면 왜 여기를 ’식은 땅‘이라 하며 묘지도 쓰지 않은 것인가? 그것은 ‘시권’이 시궁(시궁창)으로 들려서 “더러운 물이 고여 썩은 바닥이나 비유적으로 몹시 더럽거나 썩어 빠진 환경(처지)”이란 말과 유사하여 ‘지력이 식은 땅’으로 오해했는데 몽골인들은 조선재료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어찌 사지(死地)에 그렇게 큰 숲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시근이오롬은 굼부리가 없는 원추형으로 밖에서 보면 솔박처럼 곱게 보인다. 솔박은 한 되들이 정도로 가시나무 등의 속을 파서 곡식을 담거나 바람에 곡식을 까불 때 쓰는 농기구이다. 탐방로가 없는 시근이 둘레길은 단오를 맞아서 무릎 위까지 올라온 풀들을 헤치고 나가기 어려웠다. 보랏빛 꿀풀들이 곱다 했더니 누가 심었는지 주홍빛·분홍빛 영산홍도 피었다.

가시나무가 이 오롬의 주인이나 비자나무·주목도 보이고 동백·꽝꽝·사스레피·돈나무·후박·참식·섬오갈피는 푸른 잎이 싱싱하다. 구지뽕은 열매 맺혔고 산뽕나무는 오디가 익어가는데 산딸기는 검붉게 읽어 마른 목을 축여주었다. 남쪽에는 조경수용 굴거리·팽나무 등이 심겼다. 길이 없어 행여 길인가 싶어 여러 번 헤매는 귀갓길이 어려웠으나 그 뜻을 찾으니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