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시에서 애조로를 타고 가다보면 연동에 이르러서 왼쪽으로 동글동글한 쌍둥이 오롬들을 보게 된다. 제일 오른쪽이 봉개동 민오롬인데, 그 뒤로 제주시에서 제일 높은 드림타워 라는 쌍둥이 빌딩도 보인다. 그리고 연동의 세쌍둥이 오롬인 남짓은오롬과 광이오롬 그리고 서쪽으로는 언덕처럼 보이는 낮은 상여오롬(염통악·念通岳)이 보인다.
제주 오롬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치장한 공주를 뽑으라면 당연히 연동 광이오롬 일 것이다. 그런데 그 이름이 덜 알려진 것인지,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야 할 런지, 광이오롬이 그렇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절물오롬은 ‘오롬’ 그 자체가 공원 이름이지만 광이오롬은 오롬 전체가 공원이나 ‘한라수목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기 때문이다.
한라수목원의 중점인 광이오롬은 제주 도심 속에 숨은 ‘잠자는 공주’ 같다. 광이오롬은 제주시 연동 산62번지에 있으며 해발 266.8m, 비고 77m, 오롬 둘레 1970m, 저경 668m, 면적 236,701㎡이다. 그러나 오롬은 잠들지 못한다. 그것은 한국의 운동객·관광객이 아닌 중국 여행객 ‘요커(遊客)’들로 방송과 들리는 말소리조차 모두 중국어뿐이다.
광이오롬은 달리 ‘괭이오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같은 뜻의 송당리에 괭이모루도 있다. ‘괭이’라는 말은 고양이의 준말이며, 지금은 쓰이지 않는 옛말이다. 그러나 송당 괭이모루가 고양이와 무관하듯 이곳 연동 괭이오롬 역시 고양이와 무관하다. 필자가 보기에 고양이 모양이 명칭에 합당한 곳은 김녕리 괴살메(묘산봉메·猫山峰)한 곳뿐인 듯하다.
필자는 고양이 모양을 찾을까 하여 광이(괭이)오롬을 수차례 돌아보았으나 광이(괭이)오롬에서 고양이 모습은 찾지 못하였다. 또 다른 명칭으로 간장의 두 간엽 같다 하여 ‘간열악(肝列岳)’이라 했다는 데는 수긍이 간다. 한라수목원 북쪽, 동쪽에서 보니 마치 작은 v자 모양이다. 그러한 모양이 괭이갈매기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두 개로 보이는 봉우리가 두 개 간엽으로 보이나 괭이갈매기 모양도 아닌 듯하다.
몽골 사전을 찾는 중에 ‘광이’의 광(廣)은 ‘넖다. 넓히다’라는 한자로, 히(~ХИЙХ)는 ‘만들다’라는 몽골어이다. ‘광히~’는 ‘넓게 만들다=넓히다’라는 뜻이 된다. 필자는 성산읍 모구리오롬이 몽골어 모고이(МОГОЙ·뱀)에서 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 이유는 오롬이 이등변 삼각형의 긴 꼬리를 가졌고, 그 일대는 뱀이나 살 곶자왈 돌 바퀴와 찔레 가시 천지였다.
또한, 봉개동에는 거친오롬이 있는데 이는 거칠다는 말이 아니고, 몽골어 ‘기대·희망’이라는 뜻을 가진 ‘거~치(ГООЧ)’에서 왔다고 말한 바 있다. 몽골 이민자들은 이웃의 연동 광이오롬까지도 지경을 넓혀서 광(廣)히(~ХИЙХ)라고 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의 광이오롬은 한라수목원을 만들며 정상까지도 제주산 퀴가시(구지뽕)·찔레 등의 찔리는 가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롬 남서쪽에는 거슨세미가 있어서 식수를 확보할 수 있고, 오롬 남서쪽과 염통메 동쪽 구릉지대는 ‘방실리(房室里)’라 불렸는데 이는 ‘사람이 거주하기 좋은 곳’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 남쪽에 와전(瓦田)이라는 밭에서는 기와 조각도 발견되었다는 것을 보면 일찍이 사람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고 김종철은 말한다.
제주에서 겨울을 보내는 일은 하늬바람(北西風)을 피하는 일이다. 서쪽으로는 염통메가 막아주고 북쪽은 광이오롬이 막아주고 남쪽으로는 따뜻한 햇볕이 비추니 사람이 거주하기에는 그저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 오롬 일대를 목초지·농경지로 쓰지 않고 남짓은오롬을 남겨둔 것은 연료를 손쉽게 구하기 위해서 모두 불태우지 않고 남겨둔 것일까?
몽골은 육칠월에도 눈발이 날리고 눈이 쌓인다. 초원에서 모(ㅁ+아래아)쉬(말과 소)를 키우는 목자들은 마른 아르가(말똥·쇠똥·야크똥)을 게르(천막) 안 주방·난방용으로도 사용하는데 불쏘시개가 필요했을 것이다. 몽골은 건조하나 제주는 습지여서 이주민들은 제주를 불태워 초지를 만들 때 남겨둔 것인지, 처음부터 남겨두었는지 모르나 이곳은 제주 유일의 남짓은오롬이다.
삼 형제는 제주오롬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곳이며, 광이오롬은 세계 각지의 식물들이 함께 자라는 곳이다. 신대륙의 세콰이어·미국단풍나무도 보이지만 제주산이라고 하지만 잘 모르고 보기 힘든 참가시나무·개가시나무·종가시나무 등의 제주산 토종 나무들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광이오롬 너머로 붉은 황혼이 곱게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