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 북서쪽에 자리 잡은 영처니오롬은 상효동 산123번지에 있다. 영처니오롬의 높이는 해발 277m, 비고 97m, 면적은 256.127㎡ 이다.그리고 1981년 7월 1일 서귀포읍이 중문면과 합하여 서귀포시가 되면서 영천동이라는 새로운 동내 이름이 생겨났다.
이성계가 조선왕조 건국 시 국가이념은 승유억불(僧柔抑佛) 정책이었다. 그는 신라·고려의 멸망 원인을 불교 이념의 몰락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도 제주도에서는 155대 이형상 목사(숙종 27년 1702~1703년) 때 이르러 120여 곳 신당을 철폐하였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조사해 보니 그의 재임 중 구좌읍 송당리 성불오롬 성불사도 이때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영처니오롬의 영천관은 38대 이유의 목사(세조12년, 1466~1469) 때 건립되었으니 영천사는 그때까지 존재하였고 서로 양립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견해로 영천관 건립 초기에만 하여도 영천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천관은 제주목사가 여름에는 이곳에 머물며 돈내코 물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때 이용하던 여름 별장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적 자료를 보았더니 영천사가 폐쇄된 지 108년 후인 1811년에 제주도 오롬들을 최초로 등재한 제주목사 이원조가 쓴 ‘탐라지초본’에서 영처니오롬은 영천악(靈泉岳)으로 등재되었다. 이로써 이때껏 불려지던 영처니오롬은 한자로 음차하여 영천악으로 불려졌다. 또한, 영처니오롬 동쪽으로 흐르는 영처닛내(靈泉川)의 최종 목적지는 우리가 잘 아는 쇠소깍이다.
‘영처니’라는 말의 출처를 알려진 바 없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한라산이 바라보는 곳에 신령(神靈)스런 부처님을 모신 오롬’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그러나 오롬에는 샘이 없으나 부처님의 자비가 곧 샘 솟는 것 같다는 비유적 의미로 보인다. ‘영처닛내’가 다다르는 끝 지점 ‘쇠소깍’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니 오롬 줄기를 따라온 쇠소깍을 보며 경외감을 느껴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영천이는 ‘오름-내-깍’이 삼박자를 이루는 신령스러운 곳이다.
오롬 서쪽에는 제주에서 이름난 ‘돈내코휴양지’가 있다. 조밭에 두불검질(김매기)이 끝나면 가을 추수까지 조금의 호사를 누리는 게 ‘돈내코물맞이’였다. 어머니들이 물맞이 가는 길에 젊은 필자가 솥과 땔감을 지고 따라갔다. 물맞이 후에 어머니들이 끓여주는 닭죽을 맛있게 먹었던 때가 그립다. 그때는 돈내코가 천연기념물 한란자생지라는 것은 당연히 모르던 때다.
영처니오롬은 서귀포 중산간 마을 안이나 어떤 오롬과도 비교되지 않는 천연의 숲을 이룬다. 영처니 북쪽은 단풍의 명소인 아름다운 물오롬(수악(水岳), 성판악 휴게소 동쪽의 물오롬이라 불린 곳은 물(ㅁ+아래아+ㄹ)오롬이다) 골짜기로 이어지고 동북쪽으로 생기리오롬, 서북쪽으로 솔오롬(ㅅ+아래아+ㄹ·미악산이라고 잘못 알려진 곳)이 있는데 두 오롬 모두 현재 행정구역은 남원읍이다.
영처니오롬 바로 아래는 칡오롬, 그 동쪽은 동걸세-서걸세오롬, 서쪽은 인정오롬, 칡오롬 바로 아래는 제주밀감박물관이 있는 도라미(월라산)오롬이다. 지도상 이런 위치에서 보면 영처니는 한라산과 서귀포 시내 중간지점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영처니오롬을 올라 보면 둘레가 2m 이상인 나무들에 싸여서 전망대를 세웠지만, 전망이 가리니 무의미하다.
놀라운 것은 탐방로 입구부터 제주산 가시나무들이 도열한 것이다. 비자림 입구의 몇 그루, 광이오롬에 몇 그루 정도인데 수악계곡 등에 우거진 가시나무들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입구에서부터 탐방로 주위에도 가시나무류는 이 오롬의 주요 수종인 인데, 남원읍 멀동남오롬에 보호되는 제주특산종 조록이도 이곳 영처니오롬에는 자리 잡고 있다.
곰솔·아외·참식·생달·삐주기·사스레피·동백·구럼비(가마귀쪽)나무 등의 상록수 틈틈이 담팔수·서어나무·상수리·천선과 등의 낙엽수가 쌀밥에 뉘 같다. 하늘 가린 어둑한 숲에 가시나무·구럼비·아외·참식 애목들과 팔손이나무도 보인다. 다행한 것은 박정희의 산림정책을 따라서 울창한 숲을 ‘잡목이니 베어내고 식목하라고 하였으면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피어오른 구름이 한라산을 감싼다. “한라산 굼부리에 구름이 인듯만듯 서귀포 해녀는 바다에 든둥만둥….” 오돌똘기 한 자락처럼 서귀포 앞 바다에 떠도는 섬들과 해녀들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영처니는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최상의 오롬이 될 것이다. 한라산 제1횡단(5·16도로)도로를 타고 수악교를 넘는데 저무는 해처럼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