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방산으로 알려진 굴오롬은 안덕면 사계리 산16번지에 있다. 제주 오롬들 높이를 비교해 보면 오백나한(389m)·어승생(350m)·굴오롬(345m)·군산(280m)·족은드레(279)·노고메(234) 다랑쉬(227)·바리메(213) 등이 있는데 굴오롬은 제주에서 그 높이(비고)로 볼 때는 3위의 오롬이다. 또한 유명세로 볼 때는 청산오롬(일출봉·174m)과 쌍벽을 이룬다,
영주십경은 조선조에 매계 이한우(1818~1881)가 선정한 것이니 오래지 않은 일이다. 성산출일·사봉낙조는 조석(朝夕)의 풍광이며 영구춘화·정방하폭·귤림추색·백담만설은 제주 4계의 풍광이며, 영실기암·산방굴사·산포조어·고수목마 4곳은 제주인의 몸과마음의 삶의 모습이다. 또한 산방굴사는 천연기념물 제376호로 굴오롬의 생성 당시에 생겨난 오롬 중턱에 굴이 있어서 굴오롬으로 불려 왔으나 조선조 이후에 차츰 그 명칭이 변화된 사례이다.
굴오롬을 지질학적으로 보면 신생대 제3기에 바다에서 마그마가 분출하며 주변부와 함께 서서히 융기하여 현재와 같은 종 모양을 이루게 되었다고 전해 진다. 그래서 절오롬은 종모양의 원추형 오롬인데 굴오롬은 조면암질의 용암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를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이 한라산 꼭대기에 앉아서 휴식하는데 아랫부분에 뾰족한 것이 걸그적거려 뽑아 던졌는데 서남쪽 바다 끝에 박혀서 굴오롬이 되고 또한 뽑혔던 자리는 백록담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백록담의 조면암 암질과 굴오롬의 암질은 같으나 굴오롬이 만들어진 때와 과정이 전혀 다르다고 한다. 지질학자들이 방사성 원소를 이용하여 조사한 결과 백록담은 약 2만5000년 전이나 굴오롬은 73만년 전이라니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굴오롬은 이조시대 제주를 지키던 봉화-연대가 세워졌던 곳이다. 제주목에는 제주목(제주읍성)과 정의읍성·대정읍성이 있었다. 제주목은 현재의 제주시 지역이고, 정의읍성은 성산읍 시흥리부터 서귀포 서홍동까지고, 대륜동(법환·호근·서호동)과 중문지역은 대정현에 속했었다. 굴메(군산)봉화-산방연대는 저별악(송악산/절워리)봉화-모슬봉으로 연락되었다.
굴오롬에서 앞으로 바라보면 용머리해안 너머 제주도 남녘 바다가 훤하다. 작은 바위섬 형제와 절워리(송악산)가 앞 바다에 길게 누웠고 그 아래로는 가파도·마라도까지 밝히 보인다. 절오롬 층계를 따라 위로 올라가면 그 위에 산방굴사까지 이른다. 비탈진 쇠그믈이 쳐졌는데 아마도 낙석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굴사 안 천정에서는 석간수가 똑똑 떨어지는데 이 물은 귀한 약수라는데, 전설에는 산방덕이 흘리는 눈물이라고 한다.
산방산에서 태어난 산방덕이는 세상이 보고 싶어 하산하여 동내의 착한 총각 고성목을 만나서 인연을 맺는다. 그런데, 고을의 사또가 산방덕이를 탐내어 그 남편에게 죄를 씌워 멀리 귀양 보내 버린다. 산방덕은 산방굴사로 피하여 와서 죽은 후 여신이 되는데 남편 생각에 흘리는 눈물이 약수가 되어 떨어지는데 이 물을 마시는 사람마다 소원을 이뤄준다는 전설이다.
필자는 젊은 시절에 굴오롬 굴까지 찾아갔었고 굴오롬 아래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불상이 모셔진 중턱까지만 갈 수 있고 그 이상은 오를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다. 탐방로 상에는 참식나무·생달나무·조록나무·동백나무들과 곰솔 등이 보인다. 기록에는 지네발난·풍난·석곡 같은 난 종류와 섬회양목은 여기서만 자생한다고 전해진다.
산방굴사는 고려 말에 창건되었다는데 당시에 대정현에 귀양 중이던 추사 김정희와도 교류가 있었다고 다도로 유명한 초의선사도 이곳에서 수도하였다고 전해진다. 제주 155대 이형상 목사(숙종 27년 1702~1703년) 때는 제주도 120여 곳 신당들이 철폐 당할 때도 안전하게 유지된 것을 보면 남방불교가 아니고 북방불교였던 것으로 보인다.
굴오롬 기슭의 탐방로 좌측에는 산방굴사가 있고 그 맞은편 우측에는 광명사와 보문사가 자리 잡았다. 내륙의 화엄사나 쌍계사 등의 고찰들은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와 달리 관광객들이 시끄럽게 지나가고 큰길을 끼고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그런 곳에 바다를 향하여 허연 대리석으로 방금 깎은 모습의 부처상이 왠지 낯설어 보인다.
몇 달 전 신문 지상에 산방산의 가시나무들이 병충해를 입어서 나무들이 고사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였다. 그 원인과 조치 결과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으나 그저 안전하게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 바다 건너 황혼을 기다리는 필자도 이제 황혼 길이니 서글픈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