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이 죽었더라
“이 날의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이스라엘 왕이 병거에서 겨우 지탱하며 저녁 때까지 아람 사람을 막다가 해가 질 즈음에 죽었더라” (역대하 18장 34절)
사람이 죽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아합이 죽었다’는 사실도 놀랄 만한 일이 전혀 아닙니다. 누구나 당하는 죽음이지만, 죽더라도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입니다. 아합은 왕의 신분이었는데도 남 보기에 더럽고 치사한 모습으로 죽었습니다. 한국의 유월은 호국의 달로서, 교회 안팎 어디서나 사람들은 나라와 백성을 더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의 한국이 존재하도록 많은 선조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없었다면 그들의 수고도 무위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아합 같은 죽음을 겪지 않도록, 삶을 좋게 만듭시다.
누구의 삶이라도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불완전한 것들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는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의 노력으로 줄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다스리며 교정하는 것은 최고의 방법입니다. 옛날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역사를 보면, 완전하게 훌륭한 왕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유다 왕국의 왕들 중에는 그래도 선한 왕이 좀 있었으나, 이스라엘에는 善한 王이 전무했습니다. 아합은 악정을 베푼 이스라엘 왕들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하나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가 죽게 된 장면은 어찌 그렇게도 꾀죄죄한지!
당시의 유다 왕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의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관계의 친분을 가졌습니다.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길르앗 라못을 함께 공격하자고 요청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자는 의견을 아합에게 제시하였습니다. 아합이 사백 인의 선지자에게 물은즉, 싸움에 이길 것이라고 그들은 거짓으로 답했습니다. 그런데 미가야 선지자만은 아합의 죽음을 담대하게 예언하였습니다. 전장에 나가면서 아합은 자기를 변장하였고, 여호사밧에게 왕복을 입게 하는 속임수를 썼습니다. 아, 정말로 아합은 나쁜 인간의 전형입니다. 왕복을 입은 모습을 적에게 보이면 표적이 될까봐, 위험상황에서 자기는 살고 남은 죽게 하려고 그런 술수를 썼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기적인 것은 당연지사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은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이행하는 기본자세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죽음의 위험이 분명한 상황에서 자기만 살겠다는 뜻으로 대놓고 남을 위험하게 하는 것은 커다란 범죄입니다. 자기도 중요할 뿐 아니라 남도 귀중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잠14:31)는 것과,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도록 합시다.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은 분명히 위험의 한가운데에 놓였으나, 여호와께서 도우심으로 적들이 그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그야말로 신기한 현상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적군은 왕복을 입은 자만을 집중적으로 노렸는데도 여호사밧은 위기를 면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모든 것이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을 따라서 그 사실을 믿고 살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23:4)는 말씀을 꼭 기억하고 살아갑시다. 그러면 평안과 형통함이 따라올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만 살겠다고 꾀를 부렸지만, 무심코 쏜 화살이 아합의 갑옷 솔기를 맞추었습니다. 살아보겠다고 욕심을 부리고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발버둥을 쳐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입니다.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어떠한지 생각해봅시다. 착한 모습도 없지 않지만, 이기적이고 악한 모습들 또한 얼마나 많은지, 마음이 슬퍼집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진실로 믿는다면, 이기적 욕심을 버리고 남도 생각하며 선하게 살도록 합시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모든 것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더 욕심을 내어 우리아를 죽게 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았습니다. 그로써 다윗은 아내를 잃고 집에는 칼이 떠나지 않는 재앙이 내려졌습니다.(삼하12:8~12) 예수믿음을 옳게 하여 삶과 죽음이 하나님과 나라와 이웃에 수치스럽지 않게 합시다.
(2020년 6월 14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