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에베소서 4장 20절)
어떤 사람의 말처럼 ‘예수도 여러 종류’인 것 같습니다. 기도가 여호와 하나님만을 향한 게 아니듯이, 예수도 당연히 여러 가지이겠지요. 그래서 교회의 현실 상황이 이렇게도 요란합니다. 하긴 그게 새삼스러운 상황은 아니니만큼 크게 놀랄 것까지는 없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해 준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그려보며, 그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만이 참 행복의 길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은 그 길을 반드시 만날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로 인해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그 순례의 길을 걷도록 합시다.
육체를 지닌 사람은 육체의 활동을 위한 연료를 필요로 합니다. 그 연료는 흔히 돈이라고 불리는 재물입니다. 유형 교회는 육체를 지닌 사람들의 집합체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운영에는 돈이 필요합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에 틀린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간단한 그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언제나 어떤 문제가 발생합니다. 교회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이라 해서 특별한 것만은 아닙니다. 일반사회의 문제들과 똑같은 유형의 문제들입니다. 요즘 교회는 일반사회보다 오히려 문제를 더 일으킵니다. 예컨대 집단적인 질병의 전파에 앞장서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에 뭔가 잘못된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없는 일입니다.
교회는 정체성을 올바로 가져야 하는데, 오히려 세속의 정체성을 따르려 하니 잘못된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교회는 제도화를 중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 최소의 단순한 제도화는 없을 수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가능하면 제도화에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도 유지에는 돈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자꾸 돈을 모으고 타락하는 것은 자리를 만들고 보존하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큰 체구를 만들어 남에게 얼굴을 보이려니 돈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돈의 힘으로 앉을 자리를 만들고 거기에 안주하는 피난처가 아닙니다.
어찌하여 교회가 이방인의 허망한 태도를 따라서 행하려 하는가? 총명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굳어져, 그들의 생명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답지 않은 행위를 일삼으면서도, 그들은 전혀 감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그의 몸입니다. 예수를 정치적 운동권의 대부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가 그런 분이라면 유대인 집단의 리더로 등극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바울 사도가 전한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의 하나님이요, 그의 안에 있음으로 누구나 참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참 인간’이란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지 않는 새 사람을 일컫습니다. 예수를 믿어서 심령이 새로워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받은 사람이 어찌 구습에 따라서 종노릇 하도록 자기를 방치하겠습니까?
교회는 크든 작든 교회의 정상 활동을 해야 하는데, 덩치가 커지니 유기적 기능을 원활히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전염병이 번져 악화하기도 합니다. 교회가 스스로 정화하지 못하니, 세속의 정부가 나서서 모임의 숫자를 제한하기까지 합니다. 한심스러운 비극이기도 하지만, 한편 잘된 일입니다. 역경을 통해서라도 교회가 참 교회다워지면 다행이겠습니다, 그러면 질병도 퇴치될 수 있을 테니까.
바울 사도가 우리에게 전해준 그리스도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이방인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 기본내용입니다. 성령에 따르지 않는 태도, 허망한 욕심, 하나님의 생명과 무관한 생활, 막가파식 방탕, 더러운 이익의 추구 등을 멀리할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세계의 상황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이럴 때는 심령으로 새롭게 되는 것만이 참된 살길입니다. 영화 ‘미션’에서 奴隸商 출신 수도승 로드리고 멘도자는 포르투갈 스페인의 군대에 무력저항을 하려고 원주민을 위해 나섰습니다. 가브리엘 신부가 멘도자에게 “그대가 옳다면 나의 축복은 필요 없고, 틀렸다면 축복은 소용이 없소. 무력이 옳은 것이라면 이 세상에 사랑이 설 곳은 없을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2020년 9월 13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