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설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쿠노Koonoh 2021. 3. 28. 15:48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예수를 믿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자기 의지로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특성입니다. 역설과 기적과 초현실의 비밀을 가지고,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친히 사람이 되셨습니다. 제자들조차 그리스도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고난, 죽음과 부활에 관한 말씀을 들었을 때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의 이해는 사탄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의 오심은 본래 초자연적 기적의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게 理性的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남자를 알지 못한 처녀가 예수를 낳았다는 게 사실일까요? 죽었던 사람이 사흘 만에 살아났다는 것은 또 무슨 말입니까? 그렇지만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인간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그는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아기 예수로 태어나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님은 십자가의 처형을 당한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는 초자연적 존재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그러한 삶의 과정을 몸소 겪으신 이유는, 그의 생명 안에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말했을 때 베드로는 주여 그렇게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로 만류하였습니다. 스승의 안위를 생각하는 베드로의 만류는 얼마나 가상한 것입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매우 심한 책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책망은 베드로를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베드로의 영혼 속에 작용하는 사탄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경우에 그게 그것이지. 뭐가 다르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의 입에서 나온 말 때문에 베드로를 향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베드로를 향한 게 아니라면 오히려 이상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 속에 작용하는 영적 주체의 성질에 대한 이해와 분석을 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 가운데는 성령에 의한 말이 있거니와 사탄의 말도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 또한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자기를 살펴보는 눈이 언제나 필요합니다.

예수를 따르려는 믿음의 길은 결코 안락한 것만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영적인 눈이 아직 떠지지 않은 사람이 믿음을 수용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서, 그것은 돌밭에 뿌려진 씨앗과도 같은 상황입니다. 반면, 좋은 밭에 뿌려진 씨앗은 충실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좋은 밭의 식물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경우와도 같습니다. 이 말은 무언가 이상한 역설로 들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참 생명을 얻으리라는 게 믿음의 원리입니다. 사람들은 허무한 재물과 육신의 즐거움을 얻으려고 평생을 소비합니다. 그러다 보면 꼭 가져야 할 참 생명을 얻지 못한 채 삶을 끝내고 맙니다.

인생에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부모님을 통해, 유치원과 학교에서, 어려서부터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사회생활, 자연과학, 기계공학 등을 배워서 훌륭한 사회인, 기술과학자, 정치지도자 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야가 있습니다. 인간 존재와 영혼의 문제는,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정치와 과학과 사회의 발전으로 온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얻지는 못하는 결과에 이릅니다. 유물론자처럼 물질세계만을 절대시한다면 영혼은 고갈되어 영원한 죽음에 이를 것입니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그런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소리에 따르는 육신의 욕구를 제어하며, 성령의 음성에 따라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면 평안과 승리의 삶을 누릴 것입니다.

 

(2021328,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