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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쿠노Koonoh 2021. 4. 25. 15:58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잠언 2920)

 

말을 빠르게 하는 것과 조급히 하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조급하다는 말은 차분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말을 빠르게 하는 사람은 대개 두뇌 회전이 빠른 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천천히 말하는 사람의 두뇌 역량이 뒤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현대인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성격이 매우 조급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게 급속히 발전하여 변하는 사회에서 자기의 능력이 뒤처지는 듯한 불안으로 조급증이 더 심해지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말이 조급한 사람은 미련한 자보다도 더 희망이 적습니다.

 

말의 조급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본문과 야고보서 119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말씀은, 의미가 상통합니다. 잠언은 지혜의 말씀으로서, 성경이 말하는 지혜의 요점은 여호와 경외의 믿음입니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미련한 자로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심하게 화를 낼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너 나 없이 자기가 잘났다고 뽐내며 사는 세상인데, 미련하다거나 불쌍하다는 말을 들으면 그만 신경질이 뻗칠 테니까요. 예수님께 찾아온 니고데모는,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어리둥절한 마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유식한 선생이었으나, 믿음의 영적 차원에서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아직 미련한 상태에 머무는, 믿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말하기에 조급한 사람은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과 만물은 지혜의 창고입니다. 그것들은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에 의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시편 19:1에서 다윗이 고백하기를,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穹蒼(높고 푸른 하늘)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과 의와 거룩한 모습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만상을 바라볼 중요한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뭐든지 잘 듣고 잘 보면 이해되고 정답이 나옵니다. 반대로,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려 하면 문제의 해결은커녕 부작용만 커집니다. 말이 조급한 사람은 미련한 자보다 더 못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조급증을 피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도, 말하기와 성내는 것은, 더디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듣기는 속히 하는 게 좋습니다. 듣기를 속히 한다는 의미는, 신중하게 들으라는 뜻입니다. 빠르게 들으려면 기능적으로 두뇌가 빨라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닙니다. 딴청 부리지 말고 귀를 기울여 들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이는 일반적인 태도가 어떠합니까? 자기의 말을 남보다 앞세우기에 급급하여, 남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점차 아집에 사로잡혀갑니다.

고집이 세거나 큰소리를 친다고 해서 싸움에 이기는 게 아닙니다. 차분하게 듣고 생각을 정리하여 합리적인 주장을 해야만 남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긴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는 목적 달성을 말합니다.

 

예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이들은 하나님의 의를 위한 거룩한 군사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혈과 육에 속한 무력의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원수와 싸우는 삶이지만, 선하고 의로운 방법으로 싸우며 나아갑니다. 거룩한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중요 방법은, 조급히 말하지 않고 듣기에 신중하며 성내지 않는 것입니다. 조급하게, 듣지 않게, 성내도록 자극하는 것은, 사탄의 장난입니다.

 

(2021425,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