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이사야 26장 10절)
여호와는 창조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만물이 그에게 지음을 받았고, 사람도 그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사람은 마땅히 여호와를 찾아야 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형통한 복을 받습니다. 심지가 굳은 신앙의 사람은 평강(平康)의 복을 누릴 것입니다. 영원한 반석이신 주 여호와께서 심지(心志)가 굳은 신앙의 사람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 걷는 의로운 길은 정직한 길이요, 하나님이 이끌어주시는 평탄의 길입니다. 결국, 의가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한 일입니다.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않는다’라는 게 이 설교의 제목입니다. 인생의 길에서 가장 필요한 문제를 소홀히 한다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뇌 속에는 온갖 잡동사니의 생각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자기 생각에 따라서 행동함으로써 세상의 모습을 다양하게 만들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서 생각이 바뀌고, 또한 세상의 모습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악인이 많으면 악한 세상이 될 테고, 의인이 많아지면 살기 좋은 세상으로 차츰 변화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의인과 악인으로 구분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는 이들이 의인이고, 여호와를 거역하는 자들이 악인 또는 죄인이었습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심판에도 의연할 수 있으며, 주를 사모하는 의지를 항상 내보입니다.
그리스도는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는 구원을 주셨습니다. 아담 이래, 모든 사람은 의인으로 살아오지를 못했습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 하나하나가 부패하고 죄악스러웠습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와서 다윗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 회개한 고백의 내용입니다. 그는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죄를 생각하면서, 자기가 잉태된 그 순간부터 죄악 된 본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토로했습니다. 특히 시편 51:3에 말한바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라는 표현은 그의 고백이 지극히 진실함을 보여줍니다. 죄의 사실을 ‘인정’하고, 그 죄를 ‘기억’하며, 항상 ‘회개’하는 자세로 살아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의인은 그토록 간절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데 반하여, 악인은 은총을 입으면서도 의를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두 부류의 태도와 명백히 일치합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양과 염소의 두 부류가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섰습니다. 의인들은 자기들의 선행을 부끄러워했고, 악인들은 하지 않은 선행을 도리어 내세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작은 것 하나에라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더 나은 복을 받게 됩니다. 악인의 특징은 무엇에 대해서나 감사를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처신한다면 있던 것조차 잃는 불쌍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명했습니다. 좋은 일을 당하거나 험한 일을 겪거나, 언제라도 불평 불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의를 배우라는 게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 말씀의 요구입니다. 의(義)는 어리석고 미련하며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로워지는 방법은,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의를 배우지 않는 악인들은 불안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불이 엄습하는데 두렵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렇지만 의인들에게는 하나님의 평강이 주어집니다. 의인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자기에게 유익함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살이에서 여러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결국은 이겨낼 것을 그들은 내다봅니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문제는, 각자의 선택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2021년 5월 23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