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 7절)
어려움 가운데서 나오는 감사야말로 참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좋은 형편에서도 감사할 수가 있고, 그것이 귀중하다는 사실을 시인합니다. 상황이 좋을 때, 내 뜻대로 일이 착착 진행될 때 기분이 좋아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나의 믿음이 어느 수준에 와 있을지 파악하는 것은, 어떤 감사를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청춘남녀가 육신생활의 희망과 즐거움 가운데 있을 때 사랑을 수없이 외칩니다. 그러다가 세월의 흐름으로 환경과 삶의 변화가 오게 되면 어느새 증오와 다툼에 빠져듭니다.
추수감사주일이 되어 감사를 주제로 설교하면, 내가 과연 감사할 일이 무엇일까 궁금해질지도 모릅니다. 추수감사주일뿐 아니라 언제나 감사를 하지 못한다면, 그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사람을 대하여 사랑하지 못하는 이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착각 속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그렇게 사랑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감사주일에 사랑을 말하려고 합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고, 사랑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의 한 사람인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잘 깨닫고 있는지, 율법의 최고봉인 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있을까? 자문해보지만 큰 목소리의 대답을 얻기는 힘듭니다. 나는 사랑 없이 소리를 내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로 살아왔습니다. 지식을 가진 것처럼 논술하고 믿음을 내세워왔으나, 거기에 사랑이 들어 있지 않았으므로 주님 보시기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남을 위해 제대로 구제도 못하고 몸을 불사르지도 못했으니, 주님으로부터 도저히 좋은 점수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유익하지 못한 인생을 살았구나,” 이런 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신세입니다.
이제라도 회개하기에 늦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살아 있는 말씀은 성령의 음성으로 나의 귀에 들려옵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 자랑 교만 無禮 利己 성냄 악의 불의를 행하지 말고, 진리로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뎌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기쁨이 생겨나고 힘이 강해지며, 나아가 비로소 참된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십시오. 시련과 고통이 그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하루라도 편하고 좋은 시간이 없이 여러 문제로 늘 우겨 쌈을 당해왔습니다.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면, “감사는 무슨 감사야!” 이렇게 버럭 소리를 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게서 우러나는 감사를 기대하고 계실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나오는 감사라야,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조개의 몸속에서 생기는 진주의 비밀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에 주신 하나님의 감사 원리입니다. 사람들이 아는 것을 여러분이 잘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디라고 말씀했는데, ‘모든 것’이란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모든 것’은 좋거나 싫거나, 언제나 겪는 상황입니다. 그게 예수 그리스도의 법이요, 사랑과 구원입니다. 반면에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이것저것 따져서 말하고 발라내려 합니다. 그것은 합리적 발상과 사고로서 세상을 사는 일반적 원리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인을 따지지 않은 채 용서하고 받아주셨습니다. 침 뱉고 조롱하며 채찍질하는데도 주님은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를 따르는 무리입니다. 쫓아가다가 흩어져버리거나 배신하는 자들은 예수의 제자가 아닙니다.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 십자가를 졌어도, 회개하는 자가 제자입니다.
죄악 세상에 버려두지 않고, 내 인생을 살리신 은혜를 깨달을 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 때라도 불려갈 수 있었으나, 한 해 동안 호흡하며 일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굶으며 거지처럼 추하게 살지 않고, 깨끗한 모습으로 기도하며 살게 하셨음을 감사합니다. 의식주만을 위해 살기에도 힘들고 육신안락만을 추구할 수도 있었겠으나, 생명양식을 먹고 찬양하게 하시니 무한 감사합니다!
(2019년 11월 17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