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 10장 12절)
말과 표정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중요한 예의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감사의 실행을 삶에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입으로 감사를 말하면서도 실제로 감사함을 보여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울 왕은 아말렉을 물리친 후 여호와의 명령을 어긴 채, 제물로 쓰기 위해 소와 양을 끌어왔다고 말했습니다. 행위가 따르지 않는 감사는 오히려 교만에서 비롯된 기만(欺瞞)의 행위입니다. 그것은 알맹이 없는 감사이므로, 남을 속이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의 은혜를 받은 자는 진실한 감사로 살아갑니다.
회사나 관공서의 직원이 ‘감사합니다’ ‘고객님, 사랑합니다’ 이런 말로 응대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말에 진정성을 담아 인사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했는데, 감사를 자주 말로 한다 해서 될 일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진정성을 담아 감사의 말을 하는 이라면, 그는 분명히 생동감 있게 생활할 것입니다. 감사의 표정을 겉으로 감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나라의 첫 번째 왕 사울은, 인물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본래 겸손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으로 세움을 받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사무엘 제사장의 참석이 늦어지자, 제사장의 역할을 자기가 스스로 대신했던 것입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왕권이 자신의 후대에 이어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왕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 대리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는 외면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만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게 사람에게는 가장 복된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 준 자만과 불순종은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구상의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때에 바다 가운데서도 물 벽이 생겨 죽음을 면하였고, 광야에서는 구름 기둥의 가림으로 뜨거운 열기를 피했습니다. 먹을 음식이 없어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으며, 물이 없어 고생할 때는 바위에서 물을 내어 해갈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우상숭배와 음행과 원망으로 지도자 모세와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러한 불신앙적 태도는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과거를 보면서 “에이, 어쩌면 그렇게도 믿음 없이 불순종으로 살았을까?” 이렇게 우리가 말할 일은 아닙니다. 여기 본문 11절에 “그들에게 일어난 일은 본보기가 되고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라고, 바울 사도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그는 당부하였습니다.
어떤 어려움이든 우리에게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힘든 일이라면 오히려 더 감사할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남보다 힘들게 공부하고 운동하는 학생은 자유롭게 노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노력의 대가로서, 그들은 좋은 성적과 상을 얻습니다. 남이 따라올 수 없는 체력과 새로운 기술 습득으로 더 큰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체조 도마의 국가대표 양학선 선수는 <YANG 1>이라는 고난도 기술을 개발하여 남이 따르지 못할 만한 높은 성적과 명성을 얻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면 삶의 발전도 활력도 가지지 못합니다. 좋은 일을 감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쁜 일조차도 감사할 줄 안다면 그는 틀림없이 큰 복을 받을 것입니다.
추수 감사의 주일에 지난 한 해의 삶을 돌아봅시다. 코로나 질병에 따른 육체적 고통, 경제 활동의 제약과 곤궁한 생활, 원활하지 못한 만남과 활동의 제약 때문에, 불평하고 시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의 것이므로, 무조건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생명을 살리셨으므로, 살든지 죽든지 내 인생을 하나님께서 뜻대로 하실 것입니다. 자만(自慢) 말고 감사 순종하면, 넘어지지 않고 넘치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2021년 11월 21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