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데살로니가후서 3장 13절)
게으름과 불법의 행위는 과거로부터 늘 있어 온 해악(害惡)의 인간성입니다. 사람들에게 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이 ‘가만히 앉아서 배 뚜드리며 먹고 지내는 것’이라고 대답할는지 모릅니다. 일하지 않고 지내려는 것은, 성경 말씀에 따라서 보건대 옳지 않은 마음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보험금이나 연금 또는 유산으로, 일하지 않고 사는 데 마음을 더 기울입니다. 일하는 것은, 수중에 돈이 있느냐 없느냐와 별개의 문제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만연한 게으름과 불법을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게으름과 불법행위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사상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임박한 재림의 문제는 말세의 보편적인 관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해왔습니다. 벌써 이천여 년의 긴 시간이 지났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이 현실에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떤 사람들은 재림에 대하여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인 생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개 둘 중 하나로서, 말세가 언제냐는 부정확성, 그리고 정말로 그리스도가 다시 올 것이냐는 의구심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중대한 과제입니다.
정권 말기에는 흔히 레임덕 Lame Duck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현 정권의 임기가 멀지 않아 끝날 것이므로, 정부가 소임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누수(漏水) 현상의 표현입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언제나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예수의 재림이 내일이든 모레든 괘념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사명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면 그로써 족합니다. 그런 사람은 평소에 게으름을 부리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생활하는 자신의 모습을 흩트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지도자 또는 어른이라고 해서 무질서한 생활이나 무례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밥 한 그릇이라도 공짜로 먹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어떻게든 조심했다는 말입니다. 바울에게 대접받을 권리가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본을 보임으로써 교인들도 올바르게 살도록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과거에도 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엄히 가르쳤습니다. 그런데도 일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여전히 많았던 것입니다. 부패는 음식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도 생겨납니다. 배고픈 자에게뿐 아니라 배부른 자에게도 게으름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잠언 26장 15절에는,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자는 실로 죽어 마땅한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먹을 것과 돈이 많은 자는 힘들게 일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 게으름을 피웁니다. 먹을 게 풍부하며 게으른 자도 육체의 질병과 정신적 피폐의 어려움과 고통을 겪습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조용히 일하며 자기 양식을 먹는 자는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행복을 불안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세상의 영적 분위기가 하도 뒤숭숭하고 시끄럽다 보니,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마저 적잖이 오염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은 형제들이여,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도록 합시다. 나만의 힘으로는 현실의 비바람을 이겨내기가 어렵지만,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께서 내 곁에 또는 내 안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성 삼위의 하나님으로서, 그는 사람 속에서 역사(役事)하십니다. 그가 도우시고, 위로 격려하시며, 붙들어 영원토록 나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리고 불의한 이들을 경계하고 가르치되 사랑으로 권면하면 성령님이 힘과 용기와 열매를 더해주실 것입니다.
(2021년 12월 5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