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벧에돔의 집으로
“다윗이 궤를 옮겨 자기가 있는 다윗 성으로 메어들이지 못하고 그 대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역대상 13장 13절)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이 죽은 후에 백성의 마음은 다윗에게로 향했습니다. 다윗이 백성의 추대를 받아 왕권을 차지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의 법궤를 옮겨오는 일이었습니다. 사울 왕은 일찍이 블레셋과의 싸움에 법궤를 가지고 나감으로써 승리를 기대했었으나, 오히려 법궤를 적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법궤를 찾아오는 것은, 국권의 회복과 증진을 위한 중대 과제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으로 법궤를 옮겨오려던 계획이 좌절된 채, 한동안 오벧에돔의 집에 안치(安置)하게 되었습니다.
‘언약(계약)의 궤’ Ark of the Covenant로 불리는 법궤(法櫃)는 하나님의 임재(臨在)와 동행을 나타내는 상징물입니다. 거기에는 십계명의 돌판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론의 지팡이와 만나도 함께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법궤가 주는 의미는 하나님의 계명과 능력의 구원, 그리고 영생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의 사람이라면, 마땅히 주님의 교훈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 능력으로 사람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또한 구원받은 그리스도의 백성은 성령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사울 당시 블레셋과의 전투에 법궤를 동원한 것은,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법궤를 이교(異敎)의 신상(神像)처럼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법궤 앞에서 하나님의 계명이 가르치는 대로 깨닫고 순종해야만 했습니다. 그러기는커녕 법궤를 가지고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이길 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 태도는 잡신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이 흔히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알리바바와 사십 인의 도둑 이야기’에서 “열려라, 참깨!”라고 주문(呪文)을 중얼거리기만 하면 보물 가득한 동굴 문이 스르르 열릴 듯이 생각하는 어리석음과도 같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교인 중에도 그런 식의 엉터리 의식을 가진 이들이 상당합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오직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 이름을 부름은, 그저 구호를 외치듯이 예수를 부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외침에 진정성이 내포되어 있지 않다면, 천만번을 소리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신앙에는 자기 실존의 절규와 실행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법궤를 다윗의 성으로 옮기던 중에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의도가 좋았고, 법궤 이동에 필요한 여러 조건도 갖추어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법궤에 대한 의식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외형은 갖추었으나 내용이 결여한 상태에서 실행에 나서다 보니, 위급 상황에서 그만 실수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기돈의 타작마당에서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으므로, 여호와의 진노를 받아 웃사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 일로 다윗은 두려운 마음이 들어, 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기게 했습니다. 그 후로 석 달간 궤가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법궤를 안치한 덕분에 오벧에돔의 집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당시의 오벧에돔이 누구이며 어떤 지위의 사람인지, 또 얼마나 훌륭한 인물인지, 잘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그는 가드 출신의 블레셋 사람으로서, 법궤를 옮기는 일에 선택을 받았던 웃사가 죽는 바람에, 오히려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며, 그들의 사는 모습도 가지각색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제 잘난 멋에 산다고, 합니다. 자기 잘난 대로 살다 보니, 자기 유익을 위해서 기회만 되면 남을 짓밟고 해치기도 합니다. 결국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일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오벧에돔에게 주어진 복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복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가만히 누워 하늘만 쳐다본다고 주어지지 않습니다. 복을 받으려면 법궤를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죄와 사망의 과거를 확실히 깨닫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훈을 영생의 양식으로 먹으며 성령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2022년 1월 9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