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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쿠노Koonoh 2022. 3. 20. 15:47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역대하 2616)

 

본문은 유다의 10대 왕 웃시야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는 16살에 왕이 되어 52년간 유다 나라를 통치하였습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통치함으로 그는 대단한 권력을 행사했으나, 말년에 나병 환자가 되어 불행하게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불행의 근본 원인은 교만이었습니다. 강성하여지매 교만해졌고, 따라서 하나님께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웃시야는 소위 성공한 사람의 공통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성공이란 게 자기에게 결국 유익을 주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여호와께 죄짓지 않는 인생이야말로 참다운 성공을 이룬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상태의 본성은 악이 적극적이므로 죄지을 위험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철들지 않은 어린아이가 권력을 잡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웃시야가 16살에 왕권을 가졌다니, 일반적으로 보아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그런데 다행히도 웃시야는 비교적 통치를 잘 해냈습니다. 아버지 아마샤 왕이 죽은 후에 왕권을 이어받은 그는, 비록 어렸으나 아버지의 행위대로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좋은 부모에게서 좋은 자녀가 생겨납니다. 자녀는 자연히 부모의 행위를 보면서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바르게 살지 못하면서 자녀가 옳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입니다.

부모의 받침이 중요하거니와, 특별히 웃시야는 스가랴 선지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스가랴는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선지자였습니다. 훌륭한 지도자에 의하여 올바른 신앙 교육을 받았으니 그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부모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대개 좋은 스승의 도움을 입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처럼 훌륭하게 가르쳤습니다. 좋은 선생님 가운데서도 더욱 귀한 스승은 예수님을 전해주고 성경 말씀을 가르쳐주는 목회자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이들은 그 점을 알아야 하고, 목사님을 존경하며 공손히 지도를 받는 진지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을 찾는 동안에 형통한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선 줄로 여긴다면, 혹시라도 넘어질까 봐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은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입니다. 돈이 많거나, 환경이 안락하거나,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거나, 기술과 실력이 뛰어나거나, 인물이 잘났든지 건강이 좋거나 하면, 그는 언젠가 교만으로 월권하고 패망할 수도 있습니다. 웃시야의 경우는 안타깝게도 역시나 그러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는 잘못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제사장 아사랴가 그를 제지하였으나 뿌리치고 화를 내었으므로,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단에 분향하는 일은 구별된 아론 자손 제사장들만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왕이라 하더라도 자기 맘대로 제사장의 일을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학력이 좋더라도 평신도가 목사의 일을 대행할 수는 없습니다. 지식이 좀 모자란 목사라도 나름대로 자기 고유의 성직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어수선한 시대가 되고 보니 특별한 사명감과 소명 없이 직업 삼아 목사 노릇을 하려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불법을 저지른 웃시야는 하나님의 벌을 받아 즉시 나병에 걸렸고, 죽을 때까지 별궁에 있다가 결국 왕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사랑과 희생으로 사람을 구원하신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영육의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뿐만 아니라 친구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할아버지 수염을 잡는 아이처럼 불법으로 행동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친해지면 무례해지기 쉬운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는데, 가장 오래도록 왕권을 행사했던 웃시야는 교만 때문에 결국 실패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고대에 가장 추한 질병으로 알려진 나병 환자로서, 본궁에 머물지도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죽어서조차 왕실의 묘지에 들어가지 못한 신세가 되었으니 반세기 이상의 화려함이 무슨 소용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한 믿음의 구원과 행복을 이루도록 합시다.

 

(2022320,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