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현 끝자락서 좌쪽으로 보이는 좌보미
금백조로 남쪽, 본체와 여러 개의 알오롬으로 이뤄진 군락
개여기(백약이) 오롬에서 본 좌보미
좌보미(오롬)가 위치한 곳은 정의군성이 있는 성읍마을(성읍리 산6번지)이다. 북쪽으로는 종달리 동거미(동거문이)와 맞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성산읍과 맞대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개여기(백약이)와 산자락이 맞닿아 있다. 좌보미 서쪽, 개여기의 경계는 (구)좌면 송당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어서 표선면·성산읍·구좌읍 3읍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좌보미에 대한 첫 번째 오래된 옛 기록은 19세기 중반에 쓰여진 제주목사 이원조(1792~1872)의 ‘탐라지초본’이다. 이 책의 ‘산천(山川)’ 조목에 표기된 제주도 오롬들은 모두 82개(제주목 43개, 정의군 24개, 대정현 15개) 오롬들이다. 이 중에 좌보미는 정의현 24개 오롬 중에 포함되어 있다.
탐라지초본 상에 나타난 좌보미는 한좌악(閑坐岳)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본래 이 오롬은 한좌보미, 한좌보산, 한좌보악(閑佐甫岳)으로 불리다가 후에 ‘보(甫)’자를 생략하고 산(山)을 악(岳)으로 바꾸어 표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까지 동네에서는 ‘좌보미 또는 좌부미’라고 불리며 첫음절인 ‘한(閑)’자가 사라져 그냥 ‘좌보미’라고 불려지고 있다.
사라진 한(閑)의 뜻은 ‘막을 한(閑)’으로 이는 ‘막다, 막히다, 문지방, 가로막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그 당시 좌보미 주위에는 제주목 김녕현에 속해 있던 송당리의 아부오롬·돌리미·민오롬·비치미 등에 가로막혀서 ‘제주목에 속한 오롬들을 ‘가로막고 있다’는 뜻으로 ‘가로막을 한(閑)’자를 썼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후 1510년(중종 5년)에 제주 목사 장림은 우도에 왜구들이 자주 출몰하여서 정의군 수산진에 속하던 우도(연평리)와 종달리를 별방진으로 편입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개여기(백약이)와 좌보미 북쪽에 위치하던 종달리(거미오롬·문새기·손지·용누니·윤드리·지미오롬)과 송당리 대천동(성불오롬·가문이오롬) 등을 잃게 되어 그야말로 좌보미는 제주목에 가로막히게 되었으니 한(閑)스러운 오롬이 된 것이다.
지금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정의군 끝(백약이)에서 좌측으로 보는 오롬(좌보미의 미)’이라는 의미로 ‘좌보미’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그러다가 이 지역이 지도에 표기되면서 단지, 한자로 표기하며 음을 차용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필자는 좌보미를 제주어로 ‘정의군 끝(백약이오롬)에서 좌로 보는 오롬’ 이란 뜻으로 이해하는 게 좋다고 본다.
개여기(백약이)오롬에서 본 좌보미와 좌보미 알오롬들
좌보미는 개여기에서 잘 관망할 수 있다. 개여기 위에서 보면 북쪽으로는 동거미-손지-용누니-윤들이-멀미오롬이 한 줄에 서 있고 동남쪽으로는 좌보미 본체가 크게 보이고 그 뒤로 연이어 볼록볼록한 좌보미 알오롬들이 연달아 솟아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제주의 기생화산이 문어발처럼 연쇄적으로 분화했음을 볼 수 있다.
좌보미 남쪽의 굼부리는 말굽형으로 열려 있다고 하나, 그 각도는 소의 멍에처럼 구부러져 있다. 제주의 오롬들은 사방에서 보는 모습이 각기 다른데 특히 좌보미는 더 그렇다. 서쪽에서는 독일군 철모를 당겨놓은 모습이나 북쪽에서는 납작한 사다리꼴 모양이고, 남쪽에서는 아가씨 유방처럼 뾰족하고 곱다. 그러나 좌보미의 다양한 모습들은 동쪽에서 볼 수 있다.
좌보미 동쪽 입구로 들어서면 북동쪽으로는 좌보미의 멍에처럼 휘어진 오롬의 본체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좌보미 서쪽으로는 좌보미에 속한 여러 개의 알오롬이 둥글둥글하게 보인다. 좌보미 알오롬들은 몇 개의 산재한 군체들을 이루고 있는데 이런 모습은 제주의 어떤 오롬들에서도 비교하기 쉽지 않다.
이전에는 좌보미 탐방로에 타이어 줄로 엮어진 매트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형체를 찾기 어렵고 다만 매트를 고정했던 핀들만이 이곳이 탐방로가 깔렸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좌보미 탐방은 삼나무가 베어진 서쪽 아래편에서 오른 뒤 긴 등성이를 타고 서쪽으로 내려오든지 아니면, 동쪽 등성이에서 다시 되돌아 내려와야 한다.
좌보미 등성이에는 주로 제주산 곰솔들이 종종 보인다. 좌보미의 특별한 식물은 겨울딸기다. 등성이 좌우에 짙은 이파리 속에는 겨울에도 빨간 겨울딸기가 열린다. 대수롭지 않게 보이나 겨울딸기라니? 모르는 사람들은 새빨간 거짓말이라 할 것이다. 제주산 야생의 겨울딸기는 조천읍 동백동산과 남원읍 한남리 오롬들에도 조금씩 있으나 이곳만큼 많은 곳은 없다.
좌보미 등성이에는 식재된 일본산 삼나무들이 주류이다. 그러나 쌀밥에 뉘처럼 간간히 제주 토종나무들이 아쉽게 자리 잡았다. 동남쪽으로는 좌보미 본체와 알오롬 사이에 제주도 초가지붕을 덮는 키 큰 황새풀들이 들판을 이룬다. 참나무(도토리)도 보이는데 식재된 듯해 보이는 제주산 산벗나무들도 보인다. 봄이 오고 꽃피워도 보는 이 없으니 홀로 피고 질 것이다.
좌보미 북쪽에는 성산읍 공설묘지가 있고 그 남쪽 편 좌보미 입구에는 표선면 공설묘지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바로 오롬 자락을 맞대고 있는 개여기 입구에는 수많은 차들이 주차돼 있다. 혼사 촬영을 하거나 쌍쌍의 신혼 여행객들,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몰려든다. 그러나 좌보미는 오늘도 잠잠히 죽은 제주인들을 품고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문희주의 제주오롬 스토리, 뉴제주일보 2022.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