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주의 디카시 오롬스토리

선작지왓 망동산부터 정이현 망동산(돌산)까지

쿠노Koonoh 2022. 7. 20. 09:39
뉴제주일보 승인 2022.07.14 19:00
망동산

한라산 망동산부터 해안의 망동산까지 망동산의 역사들
한라산 선작지왓북쪽에 있는 암반으로 이루어진 망동산.
 

제주에는 망동산이라 불리는 오롬(언덕)들이 많은데 그중 제일 높은 망동산은 한라산 선작지왓(애월읍 광령리)의 망동산이다. 한라산 서쪽 선작지왓 일대의 오롬(동산)들 중에 망동산은 지금 망동산이라 불리는 만수(만세)동산이 아니라 그 아래쪽 조금 높고 편편한 바우언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외로도 제주도에는 망동산(오롬)이라 불리는 곳들이 유독 많다. 
 
▲성산읍 신천리의 경우는 녹고지동산, 센동산, 남산, 망동산 등 4개의 동산이 있는데 이 중에 망동산은 신풍리와 경계지역으로 신천리 말 목장 입구로 알려진다. 이 부근에서는 비교적 높은 지형의 용도로 볼 때 ‘사냥할 때 망을 보던 동산’으로 전해지나 옛날 말먹이던 일이 주요하던 때는 ᄆᆞᆯ테우리들이 말 떼를 관망하고 휴식하거나 점심을 먹었을 곳들로 보인다. 그리고 겨울에는 동네 총각들이 꿩잡이 망을 보던 장소로도 쓰였을 것이다.

▲대정읍 동일리 동산중에는 빌레기 남동산, 쇠우리동산 등이 있는데 망동산은 망대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이 동산은 대정읍 동일1리, 북쪽 약 1.5Km 지점에 위치한 자그마한 동산이다. 쇠우리동산은 쇠테우리(목자)들이 소를 먹이다가 귀상곳 못으로 내려가서 물을 먹이고 쇠우리 동산으로 가서 소를 가두고 쉬며 담소하던 곳으로 전해진다.

▲남원읍 한남리 망동산은 바닷가 본향당 당바당에 있다. 또한, 의귀리 본향당이 있는 넉시오름에도 망동산이 있으며 수망리 본향당 물우랏당(무랏당)에도 망동산이 있는데 이들 망동산은 샤머니즘의 신당들이 있던 곳으로 샤먼들이 제사할 때 쓰이던 곳들로 볼 수 있다.  

▲제주에는 과거 조선 말기까지 25봉수 38연대가 있었고 이 모두를 망동산으로 보아도 맞을 것이다. 그러나 연대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현재, 세화리 해녀박물관 해녀항쟁탑이 있는 동산은 ‘연듸골 망동산’인데 이는 연대가 있던 곳으로 하도-상도-세화의 경계가 이루어지던 골짜기를 말하는데 위의 숫자에 들어 있지 않다. 세화리 해안가의 망동산들은 바닷가 모래 언덕들에 있다. 촌로들은 망동산에서 밤새워 바다를 지키며 떼를 이루어 불을 켜고 밀려오는 고기 떼(주로 멸치·고등어·전갱이)를 바라보는 어군탐지망의 역할을 해왔다. 이 경우는 제주도의 다른 마을들도 유사하나 기계 배(어선)들이 점차 늘며 마을 앞바다는 불야성을 이루며 불 켜고 그물과 주낙 등으로 싹쓸이하면서(2000년 초)부터 아름답던 제주의 옛 전통들도 이제는 한때의 지나간 역사가 돼버렸다.

▲구좌읍 세화리와 평대리 경계를 이루는 망마루동산은 가축을 보던 망동산이라 말하기도 하나 이런 용도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지경은 인가 지경이고 해안가 농토들이다. 이 동산(언덕)은 1510년 중종 5년(목사 장림) 왜구의 출몰이 잦아서 김녕(현)방어소를 별방진(하도리)로 이전하게 된다. 당시 세화리는 별방진에 속하고 평대리는 김녕현에 속했기에 경계를 이루는 ‘막모루(마지막 모루)동산’이 ‘망모루’가 돼 발음상 혼동이지 망보던 ‘망모루’가 아니다. 

▲우도면 망동산은 천진항에서 하우목동으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데 이는 본래 장림목사가 우도(당시는 별방진 연평리, 후에는 구좌면 연평리)를 정의현 수산진에서 제주목 별방진으로 행정 이전시킨 이유가 ‘외침을 막기 위함이니 외적침입을 망보던 역할과 우도에는 고려 시기부터 소목장으로 쓰였기에 목축을 망보던 곳이었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제주에는 과거 조선 말기까지 25봉수 38연대가 있었고 이 모두를 망동산으로 보아도 맞을 것이다. 연대의 경우 이보다 훨씬 더 많은데 현재, 해녀박물관 해녀항쟁탑이 있는 동산은 ‘연듸골 망동산’으로 하도-상도-세화의 경계가 이루어지는 골짜기를 이룬다. 그러나 위의 연대 숫자에 들어가지 않았고, 오롬 숫자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곳이 화산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풍화작용으로 패사(조개가루로 이루어진 모래)가 쌓인 언덕이기 때문이다.  

▲제주도 오롬의 숫자를 정확히 셀 수 없으나 현재 368개로 보며, 그중 망동산(오롬)으로 불리는 곳은 한림읍 △느지리-망오롬, 애월읍 △선작지왓-망동산 △웃세누운-망오롬 △고내-망오롬, 조천읍 △ᄀᆞᆯ채-망오롬 △우도면 망동산, 성산읍 △남산-망오롬 표선면 △돌산(달산)-망오롬 △토산-망오롬 등 9개다. 그러나 제주 오롬들은 대부분 망오롬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특이한 경우로는 김녕리 삿갓오롬(입산봉)은 옛날 봉수대가 세워졌던 연유로 망동산이라 불려지기도 하나 얼마 전까지도 오롬 전체가 김녕리 공동묘지로 쓰여졌다. 사실 제주도 어느 오롬을 막론하고 개인묘지, 또는 마을 공동묘지로 쓰이던 곳들인 만큼 제주오롬의 용도 중 하나가 묘지로 쓰였으나 삿갓오롬 망동산은 ‘망자의 한을 달래주는 망(亡)동산이라 불렸다. 

제주 오롬을 시대별, 용도별로 분석해보면 다름과 같다. ①고려시대 이후(700년~)는 ᄆᆞ쉬(牛馬) 목양지로 쓰였다. ②조선시대(~200년전)는 봉수대 또는 연대로 쓰였는데 이는 방어용으로 볼 수 있다. ③고려시기부터 최근 2000년까지는 묘지로 많이 쓰였다. ④일제시기였던 100년전에는 군사용지로 많이 쓰였다. ⑤해방 후 60여 년 전, 독재시기에 제주 오롬들은 산림녹지로 쓰였다. 그중에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으로는  ⑥당오롬들로 보여진다. 즉 이는 종교적인 용도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제주오롬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목양지로 쓰이던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오롬이 바라는 바는 아니었다고 본다.

동쪽으로 바다를 바로보고 서쪽으로 한라산을 바라보는 하천리 달산망오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