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가는 한라산 제1횡단도로는 제주도에서는 한라산 동쪽 중턱을 횡단하는 첫 번째 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5·16도로라 불리는 것은 민주화된 오늘날 박정희 군부독재정부의 업적을 상징해 옳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필자는 굳이 이 도로를 한라산 제1횡단도로하고 부른다. 이 도로는 박정희 군부독재정권이 사회에 악을 끼치는 깡패들의 순화를 위해 동원시켜 공사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는 소위 북한의 ‘노동단련대’와 다르지 않다. 실상은 박정권에 항거하는 반정부주의자들을 동원시켜 진짜 깡패들에게 구타당하는 인권이 유린된 중에 건설된 눈물의 고개이다.
제주도의 폭설이 내리면 제일 처음 통제되는 곳이 바로 한라산 제1, 제2횡단도로다.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나가는 한라산 동쪽 자락의 중간에 성판악휴게소가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이 한라산 국립공원 성판악 입구이며, 한라산 등반 코스 중 ‘성판악 등반로’의 시작점이다.
성널오롬은 춘하추동 사계절 언제나 특별한 곳이나 성널오롬의 겨울은 더욱 특별하다. 버스는 눈 쌓인 한라산 높은 길을 제설차가 밀고 트인 자리를 마치 눈 터널을 지나듯이 푸른 제주시에서 한라산의 겨울 왕국을 지나서 다시 반짝이는 서귀포 앞바다를 보며 산을 내려가면서 한라산 횡단도로를 내려 가다보면 여기가 남국의 섬 제주도라는 것이 거짓말 같다.
제주도 행정구역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부챗살처럼 나뉘다보니 제주시와 서귀포가 남북으로 나뉜 자리에 서쪽은 제주시 애월읍과 서귀포시 안덕면, 동쪽은 제주시 조천읍과 서귀포시 남원읍이 파고 들어서 경계를 이루는데 성널오롬은 행정구역 상으로는 남원읍에 속한다.

조선시대 헌종 7년 275대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원조는 그의 목사 재임 시기(1841~1843)에 여러 권의 제주에 대한 연구서를 남겼는데 특히 그의 저서 중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 산천조에는 제주오롬들을 최초로 기록하고 있다. 탐라지초본 상에는 정의군 25개 오롬들이 소개되는데 이 때 처음으로 성널오롬은 ‘성판악(城板岳)’이라 불려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부터 제주에서 불려지던 성널오롬은 잊혀지고 ‘성판악’이라 불리게 됐다. 성널오롬은 ‘산 중턱의 바위들이 마치 널(판자)모양으로 성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성널오롬’이라고 불려진 것이다. 제주에서 성(城) 성자가 쓰여진 곳은 성산(일출봉)과 성판악 두 곳 뿐이다, 그러나 판자(板子)의 뜻을 가진 오롬은 표선면의 반널오롬과 한경면 널개오롬이 있다.
여기서 온전한 성(城)의 의미를 가진 오롬들 중에 외관 상 바로 보고 알 수 있는 곳은 성산일출봉(청산오롬) 뿐이다. 또한 널(판자板子)의 의미를 가진 오롬들 중에 표선면의 번널오롬과 한경면 판포리의 널개(板浦)오롬은 판자같이 평평하고 넓다는 의미에서 온 말과 전혀 다르다.
성널오롬은 휴게소에서 서진해 걸으면 한 시간 반이면 갈수 있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어느 해 젊은 시절 한라산 등반길에 성널오롬을 가려고 보이는 데로 길을 찾느라고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오싹하다. 성널오롬은 눈에 보이지만 결코 만만한 코스가 아니다.
그러나 젊음은 무심코 나설 수 있는 용기가 있었고 큰 코를 닥쳐도 해볼 만한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엄두를 내기에는 쉽지 않은 길이다. 오래 전부터 한라산을 등반할 때 성판악코스를 종종 이용하기도 하지만 성널오롬을 탐방한다는 것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몇 년 전 겨울, 한 차례 폭설이 지나고 파란 하늘이 맑고 포근한 날에 성널오롬을 탐방하며 조사했다.
성널오롬 등반로 초입에는 제주산 낙엽수들인 단풍과 고로쇠·산딸나무·때죽나무들이 주축이고 때로는 구상나무·노가리 나무들이 종종 보이고 그 아래로는 아직 자라지 못 한 굴거리 나무들이 푸른 빛으로 박혀 있다. 교목지대를 지나고 나니 주위는 온통 산죽(조릿대)가 지천인데 그 속에 철쭉과 꽁꽝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교목들 너머로 성널오롬은 성처럼 웅장하다. 성널오롬은 해발 1만50m 한라산 어깨 위에 표고 165m(해발 1215m)로 우뚝하다. 그래서 성널오롬은 한라산에서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오롬으로 알려져 있다. 성널오롬은 이름처럼 벼랑으로 이루어져서 멀리서 볼 때는 판자로 둘러쳐진 성 같아 보인다. 그래서 성널오롬은 그런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오롬이다.
성널오롬을 겨냥해 등반하는 이는 많지 않다. 대부분 한라산을 향하는 중에 멀리서 바라보며 지날 뿐이다. 한라산 북쪽은 골머리오롬·아흔아홉골, 남쪽은 볼래오롬·영실기암, 서쪽은 어승생·윗세오롬이 있다면 동쪽은 ᄆᆞᆯ오롬(물오롬)과 성널오롬이 제주를 지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