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산 119번지 늡서리오롬은 ‘교래자연휴양림’ 내 있으나 돌문화공원 소속이라는것은 무척 잘못된 일인 것 같다. 서귀포시의 모구리오롬(성산), 붉은오롬(표선), 머체왓(남원), 서귀포휴양림(서귀포) 등과 비교해 보면 문화와 자연이라는 성격이 다르고 면적도 방대하다.
늡서리오롬은 해발488.9m이나 비고는 고작 56m밖에 되지 않는 데 이는 이 오롬이 해발 432m 곳자왈 위에 솟아오른 오롬이기 때문이다. 또한, 면적이 115,505㎡로 교래리의 돔배오롬 면적(117,259㎡)과 비슷한 오롬이다. 늡서리는 교래자연휴양림에 속하는 큰지그리(344,976㎡)오롬이나 휴양림 밖에 있는 족은지그리(120,674㎡)오롬보다도 작고 낮은 오롬이다.
여름으로 한창 푸르러 지는 소만(小滿)을 며칠 앞둔 날, 교래자연휴양림에 재직하는 김경종 해설사와 늡서리오롬을 탐사하게 됐다. 그의 말로는 휴양림 안 사무실 바로 옆인데도 탐사해 볼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멀리 있는 지그리오롬은 휴양림측에서 탐방로가 되어 있는데 이 오롬은 왜 버려두었는지 모르겠다”고 할 만큼 이 오롬은 버려져 있었다.
이 오롬의 어원에 대해서는 일찍이 이 오롬을 탐사한 김종철은 “이 오롬의 명칭에 대한 어원은 알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롬’에서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주위 묘비에는 만상봉(晩霜峰)이라는 표기도 있는데 이는 늡서리를 ‘늦서리(늦을/저물 晩, 서리 상霜)의 한자 표기로 오기(誤記) 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한국어사전에서 ‘늡’을 검색한 결과 함남, 강원도 지방에서는 ‘늪’의 방언으로 쓰이고 경북에서는 ‘수풀’을 일컫고 있었다. 한국어 사전의 의미로 늪이란 ‘땅바닥이 우묵하게 뭉떵 빠지고 늘 물이 괴어 있는 곳. 진흙 바닥이고 침수 식물이 많이 자란다. 또는 빠져나오기 힘든 상태나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고, 유의어 구렁텅이 또는 나락이라고 말한다.
표준한국어대사전 맞춤법·표기법에 따르면 눕은 현대 한국어 ‘늪’의 옛말인데 17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난다. 19세기에는 ‘눕’의 ‘ㅜ’가 ‘ㅡ’로 변화된 ‘늡’으로 나타난다. 20세기 이후에는 종성 ‘ㅂ’이 ‘ㅍ’으로 변화된 ‘늪’으로 나타나서 현재에 이르렀는데, 20세기 이후 ‘조선어사전’(1920)에는 ‘늡’으로, ‘조선어사전’(1938)에는 ‘늪’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늪은 소택(沼澤), 습지(濕地) 등을 말하나 늡서리오롬은 곳자왈 속의 오롬이다. 필자가 탐사한 결과로는 다른 오롬들에 비하여 다소 질퍽거리기도 했으나, ‘물(水)’의 의미는 아니라고 본다. 고려대 중한사전은 위의 뜻과 달리 ‘豁子huō‧zi라고 하였는데 이는 북방어 언청이(唇裂)’ 또는 ‘성벽을 허물어 만든 통로(城墙豁子)’라 했다. 필자는 북방어의 ‘언청이’라 함은 이 오롬이 북동향 굼부리를 가진 오롬이기 때문에 굼부리를 오롬의 ‘언청이’로 볼 수도 있다.
그중에 ‘성벽을 허물어 만든 통로(城墙豁子)’가 맞다는 것은 김종철의 ‘오름나그네’에서 보면 “북동향으로 벌어진 굼부리 안에는 잡목이 우거져 있다. 기록에 따르면 많이 메워져 버린 이 화구의 북동부는 그 자취가 극히 희미하게 남아 있으며 화구 안까지도 밖으로부터 새로운 용암으로 점유해 버려 결국, 산체山體의 쪼개져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했다.
이 오롬은 허물어진 오롬 북동쪽으로 길게 교래자연휴양림 주차장이 생겼고, 길게 띠를 이룬 숲이 그치면, 남원~조천 간 남조로로 이어진다. 또한, 북서쪽으로는 작지 않은 평지가 초록의 잔디로 덮여 있다. 야영장으로 쓰이는 이곳은 국제야영대회를 개최할 만한 넓고 포근해 보이는 공간이다. 돌문화공원을 이웃하니 제주문화와 자연이 만나는 아름다운 곳이다. 김경종 해설사가 말하듯이 늡서리오롬도 빨리 탐방로가 정비되어 사랑받는 오롬이 되기를 바란다.
지난 봄, 어린 노루가 사람들에게 무서운 줄 모르고 풀 뜯는 모습이 정겨웠다. 또한, 오롬을 감싸고 있는 곶자왈에는 다양한 제주산 나무들의 전시장 같다. 천선과·예덕·산벗·산목련·산뽕·고로쇠·섬단풍·오줌때·나도밤나무는 파랗고 때죽나무는 하얀 별을 달았고 숲에도 길에도 이제 별들이 지는데 산딸나무는 수천 마리의 나비가 앉은 듯하다. 뻐꾸기·휘바람새·찌르레기·제주오색딱따구리는 크~낙 크~낙 울고 습지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맹꽁이 소리를 듣는다.
제주오롬들에 많은 소나무·삼나무·편백나무 등은 5·16 이후 강제녹화될 때도 교래곳자왈을 품은 늡서리 주변은 제주산 나무들이 빨리 회복된 것 같다. 덧나무는 붉은 열매를 맺었고 둘레길에는 하얀 찔레꽃이 한창인데 노래로만 듣던 연붉은 찔레꽃을 본 것도 감격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