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주의 디카시 오롬스토리

대흘교차로 비자림로 사잇길에 숨은 대천이오롬

쿠노Koonoh 2023. 6. 20. 20:07
 뉴제주일보 승인 2023.06.15 19:18
대천이오롬 입구에 있는 붉은 화산암.
 

제주시에서 번영로를 따라 동으로 가노라면 대흘교차로 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우회전해 남쪽으로 가는 산길이 교래리 사거리에 이르면 비자림로를 만나게 된다. 이 산길에 세 개 오롬인 것구리-대천이-방애오롬들이 있는데 한 길에 있지만, 행정구역은 각기 다르다.

대흘교차로에서 우측으로 보이는 오롬은 것구리오롬으로 대흘리(山 33) 소재이다. 거기서 남쪽으로 조금 더 가서 왼쪽 중간쯤의 대천이오롬은 선흘리(山 154) 소재이다. 거기서 조금 더 남으로 가면 들판 가운데 누워 있는 큰방애오롬은 교래리(山 45)에 속한다. 대천이오롬은 동쪽으로는 민오롬, 남쪽으로는 방애오롬과 서로 자락을 맞대고 있다.

대천이오롬은 다른 오롬들과 사뭇 다르다. 산 높이(비고)는 것구리 58m, 방애오롬 48m, 대천이오롬은 67m로 조금 높은 편이다. 대천이오롬은 도로변에서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서 100 여m 건천를 걸어 맞으편(동쪽) 언덕으로 오른다. 영어의 U자 모양이라 보면 쉽게 이해된다.

대천이오롬 입구에는 커다란 붉은 화산암이 있는데 그 위에는 100년 너머 보이는 제주산 큰 가시나무가 뿌리로 화산암을 감싸고 있다. 동내 가까이라면 아래로 급격한 골짜기가 없다면 편편한 곳에 자리 잡았다면 정자나무나 신목(神木)이 될 법한 나무이다. 그런데 “이 오롬은 대체 어디 있는 것인가?” 바위 아래편에 어지러운 소로가 보여 방향을 잡는다.

시나무 언덕에서 내려와 시내에 이르고 시내를 따라 북쪽으로 걷는다. 때죽나무 하얀 꽃들이 시커먼 냇가 바닥에 별처럼 내려앉았는데 조금 더 가니 동쪽으로 언덕에 소로가 보인다. 가파른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데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벌써 여름을 재촉한다. 입구와 같은 큰 가시나무 몇 그루가 언덕을 굽어보며 버티고 서서 마른 시냇가를 마주 보고 있다.

대천이오롬 검은 시내 바닥에 별처럼 진 때죽나무꽃.

큰 숨을 돌이키고 이 언덕에서 건너편 입구의 언덕을 바라본다. 아마도 큰비가 와서 큰물(홍수)이 나면 저 언덕에서 이 언덕까지 물이 차올라 흘러내릴 것이다. 그러면 이 골짜기는 그야말로 대천(大川)이 될 것이다. “아하! 그래서 대천이오롬이구나!” 제주하천들은 상시 물이 흐르는 하천은 아주 드물다. 대천이도 천미천을 향go 흘러가며 곶자왈로 스며든다.

김종철의 ‘오름 나그네’ 책에서 대천이오롬은 본래 숲으로 우거졌던 곳인데 ‘자연발화나 화전을 일구거나 실화 등으로 숲이 사라지고 잔디밭에는 양지꽃·제비꽃·산자고가 피었다’는데 혹시 다른 오롬을 착각하여 쓴 것이 아닌지 의심 들 정도로 30여 년 전 상황과 판이하다.

이런 유의 봄꽃들은 숲이 없는 민둥산에 피는 꽃들이다. 그러나 지금 이 오롬은 나무들이 우거지고 목초지로 쓰이던 곳은 5·16혁명 정부가 강제로 숲을 조성케 한 것이다. 골짜기 주변에는 오래된 제주산 상록 가시나무, 낙엽 가시나무 종류인 참나무·상수리나무(졸참나무)들과 비탈진 곳에는 삼나무들이 우거졌다. 목초지가 풀밭이 되고, 다시 숲이 이루어진 것이다.

중턱에 이르면 우편의 삼나무들과 좌편의 굴곡진 부분에 곰솔·굴피나무·때죽나무·산딸나무·덜꿩나무·당단풍·고로쇠 등의 교목과 윤노리·박쥐나무·국수나무 등의 관목도 보인다. 다른 오롬에서는 희귀한 새우란·금난초가 노란 꽃을 피웠다. 아직 봉오리가 오르지 않은 갈매기난초도 보인다. 김종철이 본 들꽃들은 나무 없는 풀밭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과 대조된다.

이곳 역시 위로는 삼나무들이, 아래로는 관중 고사리·천남성 같은 독초들이 자라고 있다. 삼나무가 덜 한 곳에는 산수국과 산죽들이 오롬 길을 점령하고 있다. 이런 식물류가 많다는 것만 보아도 이곳은 시냇물이 스치고 지나며 습기를 품고 있는 곶자왈 지역임을 알 수 있다.

필자는 2023년 봄에도 세 차례나 탐사하였으나 김종철이 말하는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대천이오롬의 자연적·인위적 변화가 크다는 것이다. 이 오롬의 변화는 태고의 숲 지대에서 화전민 활동이 끝나자 풀밭이 되었다가 거기에 몽골이민들의 목축시대를 거쳐서 다시 풀밭에서 이제는 옛날의 숲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면 환영이다.

그 흔하던 새우란도 이제는 귀해지고 있다. 금새우란은 절물오롬·도랑쉬오롬·세미양오롬 등에서 복원되고 있다. 그러나 자홍색 새우란은 이제 더는 볼 수 없다. 제주오롬의 현상에서 바라는 바는 자생식물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제주의 자생식물들은 우리 모두의 자산이니 도채(盜採)를 막는 것,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돼야 한다. 지속적인 복원사업은 새 시대의 요청이요, 후세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일 것이다.

대흘교차로~교래사거리 산길에서 본 대천이오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