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주의 디카시 오롬스토리

거북 등껍질(甲) 같은 오롬들 앞에 있는 갑선이오롬

쿠노Koonoh 2023. 6. 29. 10:00
뉴제주일보 승인 2023.06.22 19:08
설오롬에서 본 갑선이오롬과 표선바닷가의 매오롬.
 

제주도 알려진 오롬은 368개라는 데 이 중에 표선면에는 31개 오롬이 있고 또한 표선면에서 제일 오롬이 많은 곳은 가시리로 13개가 모여 있다. 산중 마을인 가시리에서 갑선이오롬은 가시리 2~7번지에 위치하며 가시리에서 가장 동북쪽 끝에 있다. 갑선이오롬의 해발(표고)은 188.2m이나 비고는 고작 83m이니 105.2m에 솟아 있어 높지 않은 오롬이다.

가시리 마을 안에 있는 갑선이오롬 둘레에는 제주에 흔한 봄 메밀이 흐드러져 나지막한 오롬과 조화를 이루어 갑선이는 더욱 아담하고 이쁘다. 오롬은 입구에서부터 테크와 야자매트가 잘 깔려 있어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오롬이다. 그러나 주차시설이 미비해 그저 동네 사람들의 산책코스로는 무방하나 오롬꾼들이 모인다면 서너 대만 주차해도 곤란해 보인다.

갑선이오롬은 입구에서부터 휘청한 나무들이 하늘 향해 쭉쭉 뻗어있다. 오롬은 입구에서부터 상록수인 참식·생달·조록이·후박·아외나무들과 낙엽수인 굴피·천선과·예덕나무들이 혼재해 숲을 이룬다. 그 아래는 관중고사리·천냥금·자금우들이 깔려 있는데 어린 굴피나무·구럼비나무들은 1m 안 되게 자라고 있다. 마침 비가 온 뒤라 목이버섯이 꽤 보이는 데 채취할 만하다.

갑선이오롬은 가시리 동북쪽에 있다. 표선면의 오롬 분포를 보면 해안마을인 하천리에 2개, 표선리에 2개, 세화리, 토산리에 4개 등 4개 마을에 8개의 오롬이 있고 중산간 마을인 성읍리에는 9개, 산간 마을인 가시리에 13개 등 6개 동리에 31개의 오롬들이 모여 있다.

동쪽 해안마을인 하천리에는 ‘슴선이’라는 오롬도 있는데 행정구역으로는 가시리에 속하지 않고 해안마을인 하천리에 속하지만 오롬의 위치는 중산간이며 갑선이 바로 옆에 있다. 필자가 표선면의 마을과 오롬들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울창한 숲속에 테크로 조성된 갑선이오롬 탐방로.

이제까지 ‘갑선이오롬은 매미 유충인 굼벵이 같다’고 했으나 이는 제주인의 말을 한자로 음차(音借)하여 표기한 것을 해석하려는 데 따른 오류이다. 한자로 갑선이(甲蟬伊)의 갑(甲)은 갑각류(甲殼類·게·새우·따게비·쥐며느리)인데 ‘선(蟬)을 매미선(蟬)자’로 해석한 데 따른 오류이다.

매미는 ‘갑각류’가 아니라 ‘곤충류’이고 곤충류들은 갑甲(옷)이 없다. 그렇다면 ‘갑(甲)은 무엇일까?’ 중국에서는 자라를 갑어(甲魚)라 하고 거북이는 구(龜), 거북이 등껍질은 구갑(龜甲)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갑(甲)’은 ‘거북이 등껍질’을 말하며, ‘선(蟬)’은 ‘매미’라는 뜻과 아울러 ‘뻗다·펴지다·잇다·연속하다’라는 뜻도 있다. 그렇다면 갑선이오롬은 굼뱅이 닮은 게 아니다.

갑선이를 글자대로 해석하면 ‘거북이 등 같은 오롬들이 연이어 있다’라는 뜻이다. 지금 갑선이오롬은 나무들이 울창하여 전망이 없다. 다만, 바다 쪽인 북서쪽 표선 방향은 조금 보이나 동쪽과 한라산 방향인 남쪽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가시리 오롬들 중에는 따라긴(따라비)오롬을 제외하고는 초원으로 이뤄진 곳은 거의 없고 대부분 숲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5·16혁명 이전(강제녹화정책이 있기 전), 제주도 오롬들은 지금과 같지 않았고 대부분 오롬 위에까지 풀밭으로 이어져 쉬(말과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던 목초지대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양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같이 ‘솔박(나무를 파서 만든 한 되들이 정도의 농기구로 특히, 바람에 겨를 날릴 때 많이 사용하였다), 또는 거북이 등껍질(龜甲)’들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갑선이 오롬은 해안마을과 중산간 마을 중간에 있는데 ‘갑선이오롬 앞인 한라산을 향하여 바라보면 마치 거북이 등껍질 같은 오롬들이 연이어 있다’는 말이다. 이런 뜻에서 이웃한 하천리의 ‘어슴선이오롬’도 비고 29m의 낮은 오롬이 ‘마치(슴프레하게/비슷하게) 자라(갑어·甲魚)가 반쯤 진흙에 몸을 숨기고 있는 모습과 같다’는 말이 된다.

갑선이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은 1㎞ 앞의 설오롬으로 알려졌다. 설오롬에서 보니 거북이 등(龜甲) 같기도 하나 필자의 견해는 ‘갑선이의 선은 매미선(蟬)이 아니라 앞선(先)자로 쓰였어야 했다.’ 그것은 마치 이웃 송당리 선죽이가 ‘오롬 앞에 대나무숲이 있다’ 하듯이 ‘거북이 등껍질 같은 오롬(따라비·번널·병곳·록오롬)들 앞에 갑선이(甲先伊)오롬이 있다’는 뜻이다.

제주도의 오롬·마을·섬 등의 명칭·유래·어원 등은 잘못된 곳이 너무 많다. 그 오류의 원인은 ‘음차한 한자를 해석하려는 데’ 있다. 제주의 지명을 책·지도 등에 표기할 때 한자로 음차하여 쓴 것이지 제주인들이 그런 글자를 골라서 쓴 것이 아니다. 이런 까닭을 알 때, ‘제주도 지명들의 유래·어원 등을 찾으려는 노력(철학적 질문)이 시작될 것’이라는 게 필자의 견해이다.

갑선이에서 본 서쪽 오롬군락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