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명리 붉(ㅂ+아래아+)은(밝은)오롬은 상명리 1696번지에 있으며 해발 182.5m, 비고 43m의 낮고 작은 오롬이다. 필자는 몇 차례 오가던 중 어느 봄날 주말에 작정하고 찾았다. 오롬 동남쪽에 쌓아 올린 울담 안에는 두 채의 집이 깔끔한데 축대 안으로는 붉은 철쭉이 한창이다.
좁은 길을 따라 오롬을 끼고 올라도 길이 보이지 않더니 좁은 길 막다른 밭 뚝에 이르자 동쪽으로 소나무 언덕이 보이는데 ‘고사리를 채취하면 고발하겠다’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시뻘건 황토밭에 봄 메밀이 자라는 오롬 등성이에는 구지뽕·찔레·멍석딸기·줄딸기·보리똥·보리수(막게볼레)·줄사철·송악넝쿨 등이 조밀하게 앞을 막아서 좀처럼 뚫고 가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오롬 안으로는 구럼비·참식·후박 등의 상록수와 천선과·팽나무·예덕나무 같은 낙엽수도 보인다. 멀리 삐죽삐죽한 소나무와 굼부리 주위에는 뽕나무·모시(풀)도 꽤 보인다. 상명리는 오래된 중산간 마을로 예부터 이 언덕 굼부리에도 인가가 있었던 것은, 굼부리 주위에 머웃대가 심겼고, 뽕나무와 모시풀을 보니 옛날에는 비단(명주)도 짜고 모시도 짰던 것 같다.
굼부리 안에는 잡초가 무성한데, 주인이 어린 은행나무와 아로니아도 심은 것 같은데 아로니아는 하얀 꽃을 피웠다. 붉(ㅂ+아래아+)은오롬 굼부리 안의 밭들은 돌담으로 경계가 나뉘었다. 오롬 주위에 흙은 모두 뻘건 진황토다. 또한, 굼부리 안에서 보이는 돌덩이들은 다른 오롬과 달리 모두 붉은 빛이다. 오래전 타지키스탄 자산(紫山)에서 보았던 자주색 돌들이 널렸다.
제주의 밝은(붉(ㅂ+아래아+)은)오롬은 여럿이다. 살펴보면 제주시 해안동, 한림읍 세 군데가 있는데 금악리, 명월리, 상명리, 안덕면 동광리 등이 있고 애월읍 광명, 성산읍 신양(섭지코지), 표선면 가시리와 아라동의 흙붉은오롬도 있으나 ‘밝은’이나 ‘붉은’이나 한가지로 보인다. 그 이유는 본래 ‘붉(ㅂ+아래아+)은’인데, 아래아가 사라지며 ‘밝은’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필자의 견해로는 동쪽에서는 ‘붉은’, 서쪽에서는 ‘밝은’으로 많이 쓰인 것도 연구해볼 만하다.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에서나 ‘제주의 오름 368’에서 이 오롬 명칭의 유래를 살펴보니 ‘이 오롬의 모양이 보름달같이 환하고 반반하게 생겼다 하여 밝은오롬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종철은 ‘오름 나그네’에서 주위의 묘비명에서 그 유래를 찾고 있으나 위의 두 책에서 밝힌 유래의 시작은 ‘오름 나그네’에서 인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이 오롬은 본래 제주어 ‘붉다’란 말의 ‘벌근’ 또는, 붉(ㅂ+아래아+)은으로 불리다가 아래아가 사라지며 ‘밝은’이 된 것이다. 그래서 한자로도 명악(明岳)이라 잘못 불린 것이다. 이 오롬은 ‘밝은’에서 온 것‘이 아니고 제주어 ‘벌근(붉(ㅂ+아래아+)은)’에서 온 것은 제주 동쪽의 검은 흙과 전혀 달리 ‘붉은 흙’과 ‘붉은 화산 쇄석물’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마을 유물산포지는 탐라시대 ‘적갈색무문토기’가 발견된 천 년 전에 형성된 마을이다. 17세기 말 ‘탐라지’, 1703년 ‘탐라순력도’에는 만조리(느지리)로 등장한다. 그러나 1899년 ‘제주지도’에는 서명리, 19세기 중반에는 명악(明岳)으로, 마을 이름은 상명리로 나뉜다.
명월리 붉(ㅂ+아래아+)은(밝은)오롬은 한림읍 명월리에 있다, 하여 일명 ‘명월오롬’이라고 불린다. 명월리는 고려·조선 때 명월현 소재지이고 명월포구는 명월(수군)만호가 주재하던 곳이다. 만호는 전라도 여수·경상도 합포(마산)에 있었던 것처럼 과거 ‘제주군지역사령부’가 있었던 곳으로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하여 최영 장군이 상륙했던 곳이고 지금의 한림읍이다.
명월리 붉(ㅂ+아래아+)은오롬은 중산간서로에 있는데, ‘문수동’은 16세기 우둔리, 18세기 우질둔리, 19세기 효동리라 불렸다. 천수원(절)은 문수물이 있는 동네로 지금은 문수암 절터만 남았다. 조선 중엽까지 있었던 걸 보면 1702년 이형상 목사 때 사라진 남방불교로 보인다
동명리 동편으로 나가면 완만한 언덕길이고 시멘트 포장길이 끝난다. 거기에는 제주부씨·군위오씨·숙부인 문씨 묘가 보인다. 하늘과 맞닿은 완만한 풀밭을 다 오르면 “여기가 정상인가?”할 만큼 완만한 동네 언덕이다. 중산간서로 동쪽으로는 갯거리오롬·산소오롬이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비양도가 코 앞이다, 서쪽으로는 느지리·붉(ㅂ+아래아+)은오롬·정월이까지 보인다.
명월리 붉(ㅂ+아래아+)은오롬은 명월1길이 동북서(東北西) 삼면을 감싸고 한림읍으로 나간다. 오롬을 내려오며 찔레꽃 너머로 바라본 오롬이 둥그렇고 이쁘다 했더니 길게 서쪽으로 꼬리가 달렸다. 옹포천을 따라 늘어선 늙은 팽나무 길을 따라 돌아오는 길, 오롬에 비끼는 저녁 햇살이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