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시 중문동 산5번지에 있는 녹하지오롬으로 가는 볼케노골프장까지 이르는 길은 아주 찾기 쉽다. 골프장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는데 다른 길은 없다. 녹하지오름은 해발 620.5m, 비고 121m, 둘레는 2.315m, 면적 340.236㎡인데 저경이 807m의 원추형오롬이다. 오롬은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오롬을 탐방했던 사람들의 탐방기를 들어보고 싶다.
필자가 겪었던 고생을 그들은 어떻게 겪었는지 듣고 싶어서이다. 녹하지오롬은 주차장 오른편으로 나가면 된다. 오롬의 입구까지는 제주산 푸른 상록수들과 동백나무가 심겨져 “역시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오롬이라서 다르구나!” 하였지만 겨우 100m도 채 못 가서 녹하지오롬의 실체가 드러났다. ‘녹하지오롬 탐방로’라는 작은 팻말이 보여서 그 길로 들어선다.
쭉 늘어선 삼나무들이 보이는 데 조금 더 가니 꽤 넓어 보이는 길이 보인다. 그러나 몇 미터 못 가서 탐방하는 길은 사람 키를 넘는 웃자란 억새들로 탐방로는 사라져버렸다.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갈 수 없지, 내가 누군데…. ” 그렇게 뚫고 나가리라 생각하고 나가는데 완전히 억새밭 속에 갇히고 말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억새이요, 위를보니 뿌연 하늘뿐이다.
멀잖은 곳에 소나무들이 보인다. “아! 저리로 가면 소나무 아래로 길을 만들며 정상으로 갈 수 있겠지!” 그렇게 겨우 헤치고 나가는데 억새에 걸려 넘어진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데 넘어진 김에 기도 드린다. “하나님! 이 억새밭을 빠져나가게 해주세요. 저 나무 아래로 가려 합니다. 길을 열어 주세요!” 일어나 소나무 아래로 나가려는데 온통 찔레 가시·청미래 넝쿨인데 가시덤불에 빠진 발이 빼지지 않는다. 한참을 씨름하니 소나무 숲 아래다.
소나무 숲 아래는 억새밭보다 조금 나은 것 같다. 정상을 향해 기듯이 오르는데 조금 더 가니 하늘이 열리고 이윽고 키 작은 산죽들이 보여 허겁지겁 오른다. 서귀포지역에서 보라색 한라돌쩌귀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붉은 오줌 때 열매가 샛길에 보이는데 핸드폰 기지국 탑이 보인다. “저리로 가면 내려가는 길이 있겠지!” 그러나 길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도 왔던 길이니 올라 올 때보다는 낫겠지” 산죽 사이로 샛길이 보이고 좌우에는 철쭉이 심겼지만, 산죽 속에 갇힌 나무는 이미 존재감을 잃은 지 오래다. 정신 차리고 나갈 길을 보니 임도로 보였던 길은 기지국을 건설하며 차가 오갔던 길인 것 같다. 그러다 내버려 두니 이제는 억새밭이 되고 심지 않은 고사리·엉컹퀴가 지천이다. 녹하지오롬 정상에서는 나무들이 자라서인지 사방이 캄캄하고 전망이 없다.
제주에는 사슴(鹿)과 관련된 오롬 명칭이 많다. 필자가 재차 밝히건대, 사슴과 관계를 먼저 분별해야 한다. 예로써 표선면 큰사스미·족은사스미는 산기슭 녹(麓)자를 음차 과정에서 사슴녹(鹿)자로 잘못 기록하여 발생한 것이다. 거린사슴오롬과 녹하지악의 사슴 녹(鹿)자는 백록담(白鹿潭)의 록(녹·鹿)자이고 아래(下), 지(旨)는 아름답다·선미(善美)하다, 즉 착하고 아름답다는 뜻이다. 그러나 ‘백록담 아래 선하고 아름다운 오롬’은 뜻과 달리 사나운 소년의 모습이다.
한라산 제2 횡단(1100고지) 도로 휴게소를 지나서 서귀포로 내려가기 직전, 급한 커브 길에 거린사슴 휴게소가 있다. 거린사슴의 정상에서 바라보면 백록담이 눈앞이고 백록담을 바라보면 숨통이 확 뚤리는 것 같다. 또한, 오롬 아래 전망대에서는 서귀포 시내가 한라산보다 훨씬 더 멀어 보이나 거린사슴오롬에서 남서쪽을 바라보니 녹하지오롬은 바로 눈앞이었다.
녹하지오롬 위에는 거린사슴오롬이고 그 위로 민오롬을 지나면 한라산국립공원에 속하는 다래오롬이다. 녹하지오롬은 한라산국립공원지역과 서귀포(중문)지역을 잇는 중산간 지역에 속하지만 특이할 게 없다. 이 오롬은 사유지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억새밭 덤불로 방치된 모습이 너무 아쉽다. 차라리 입장료를 내더라도 탐방하기 쉽도록 정리된 오롬이면 싶다. 제주도는 땅이 흔해서 그런가? 밤나무라도 심든지, 그도 아니면 편백나무라도 심으면 좋을 텐데….
녹하지오롬을 내려와 제2행단도로로 나가는 길에서 본 녹하지는 좌로 조금 급하고 우로는 점차 미끄러지는 비뚤어진 삼각형이다. 제주도 오롬들의 보편적 모습이 아니다. 제주오롬들은 좌우 대칭이 대부분이다. 성산면과 표선면 경계선상의 모구리오롬(비고 82m)은 완만한 이등변 삼각형이다. 녹하지오롬(121m)은 그보다 짧고 급한 삼각형을 이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흐린 날씨가 비를 뿌리는 늦은 오후, 한라산 제2 횡단 도로를 홀로 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