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주의 디카시 오롬스토리

원형에서 말굽굼부리가 된 족은 돌리미 사연

쿠노Koonoh 2025. 6. 25. 09:47
삼다일보 승인 2025.06.19 18:24
족은돌리미.

구좌읍 송당리에는 큰돌리미(산253-1 번지)·족은돌리미(2451 번지) 두 곳이 있고 성산읍 수산리(4535 번지)에도 있다. 혹 간은 돌리미·도리미·돌미 라고도 부른다. 한자로는 석액石額이라고도 불리는데, 액額은 ’이마 액‘이란 글자로 이마·일정한 액수·편액偏額·현판懸板을 뜻하는 글자로, 그림·글씨·사진 등을 끼우는 틀인 액자額子라 할 때도 쓰이는 말이다.

수산리 돌미는 석액이 맞다. 주위에 있는 돌들이 마치 돌로 된 액자와 같이 둘려 있다. 그러나 최근 성산읍 돌미(석액石額)을 찾았더니 그 돌들은 이미 모두 파 헤쳐지고 깨어져 이제는 석액이 증거가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오롬으로서 그 자취를 찾기도 힘들어졌다. 그러나 송당의 큰돌리미·족은돌리미는 그 상태를 그런대로 보존하고 있다. 

큰돌리미는 송당리에 있는 비치미(오롬) 북동쪽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족은돌이미는 그와 달리 표선면 성읍리에서 찾아가야 하는데 개오롬 좌편에 보이는 작은 언덕이 바로 돌리미다. 큰 돌이미는 이마에 큰 바윗돌인 라바돔이 있어 이 라바돔이 멀리서 볼 때, 이마에 불룩하게 튀어나와 돌이미라고 하나 족은 돌이미는 전혀 다른 오롬이다.     

개오롬은 주위에서 크고 높은 오롬들은 영주산 176m, 여문영아리 134m, 백약이 132m이다. 개오롬은 개의 모양으로 비치(飛雉날를비, 꿩치)미는 날아가는 꿩을 바라보며 짓는 개”의 형상이라는 웃기는 해설도 있다 또한, 원추형인 이 오롬 정상에는 바위가 마치 뚜껑을 덮은 모양이라서 덮을 개蓋자를 써서 개오롬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해석 외에 필자(문희주)가 처음 밝ㅎ히는 해석은 개오롬이 성읍에서 보면 술시(戌時 개) 방향에 있다. 또한, 몽골어 개ГАЙ라는 말은 ’거리(길)‘라는 말로 한림-갯거리·서귀포(대포동)-갯거리·제주시(봉개동)-개오리와 같다. 즉, 길 남쪽 개오름은 정의현이고, 길 북쪽 돌리미는 제주목 좌면으로 나누는 길이 두 오롬이 구분이다. 

돌이미는 한자로 돌이악乭伊岳·석액악石額岳이라 함은 ‘돌이악’이 제주어 돌미의 음차이다. 석액악石額岳이란 말은 ‘돌석石, 이마액額’으로 돌이미의 의역이다. 돌이미는 성산읍 수산리에 있는 ‘돌미(돌산, 돌뫼)’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수산리의 돌미는 돌들이 많은 산(지금은 모두 깨어져 사라짐)인데 비하여 송당리 돌이미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김승태는 『제주의 오름 368』에서 이 오롬을 ‘돌리미’라고 표기한다. 김종철의 『오름 나그네』에서는 ‘도리미’라고 표기하나 정확한 이름은 ‘이마에 돌을 인 오롬, ’돌이미‘가 정확한 이름이다. 옛사람들은 한자 표기 시에도 합당한 글자를 택했다고 본다. 
 
‘돌이미’의 ‘돌이’는 ‘돌을 머리에 인’, ‘돌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말이다. 석액악石額岳의 ‘액額’은 ‘이마액額’이라는 말이고 보면 돌이미의 의역으로 잘 표기하였다. 오롬이 둥그렇게 돌려져 있어 ‘돌리미’라는 말은 수산리의 돌미와 혼동된 것이다. 돌이미는 북서쪽으로 열린 말굽형 굼부리 오롬으로 보나 수산리 돌리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돌이미 비고는 82m이나 족은돌리미는 비고 24m밖에 안 되는 낮은 동산과 같다. 돌이미는 그리 높지 않은 바위 돌을 기어올라야 한다. ‘돌이미’라는 이름은 바로 정상에 자리 잡은 이 바위(라바돔)에서 생긴 이름이다. 이런 뜻에서 돌이란 이름이 생겼으나 족은 돌이미는 이와 건혀 무관하다. 이런 입장은 전혀 다르게 해석 되어져야 한다. 
 
족은돌이미를 찾아가니 농사짖지 않고 묵혀둔 밭에 붉은 여뀌가 온 밭에 가득하고 또 다른 밭은 고사리 밭이었다. 키 큰 고사리밭 돌담을 돌아서 철조망을 돌파하고 가시덤불을 헤쳐서 나가니 길이 트였다. 알고 보니 처사 김영오와 부인 남평문씨 묘로 나가는 길이다. 묘지에는 동자석까지 있고 깨끗이 벌초까지 되어 있다. 그러나 돌들은 모두 허옇게 석화가 피어 있는데 “자손들이 이후에도 이렇게 돌볼 수 있을까” 하는 멋쩍은 생각을 해 본다. 주위의 묘들이 없고 깊은 산 중에 있어 여간 돌보기 어려운데 이것이 최근 제조도의 현실이다.
 
이 오롬은 본래는 “원형 분화구였는데 제주도에서 1997년도에 발행한 『제주의 오롬』에서 보면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유출...”로 말굽형오롬이 되었다고 한다. 앞서 보았던 묘역은 바로 유출된 용암인 현무암 덩어리들의 그 아래로 흘러 내린 것이다. 그리고 분화구로 나가는 곳은 천연의 숲으로 이루어진 곳자왈이다. 오롬 밖 들판에는 봄 메밀이 허얗게 해변을 방불케 하는데 그 입구에는 붉은 여뀌가 온 밭을 점령한 낮 선 광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