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베드로전서 3장 2절)
남편과 아내의 사이는 주종관계도 평범한 동료관계도 아닙니다. 하나에서 둘로 나뉜 존재로, 인격적인 동일성과 더불어 역할 분담이 주어진 협력관계입니다. 부부의 신앙이 서로 다르면 인격과 삶의 교류 및 질서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한편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믿는 이가 그의 구원을 위해 모범적 행실을 보여야 합니다. 이는 아내나 남편 어느 한쪽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이란 말에는, 두려움과 정결이라는 두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올바른 믿음은 그 두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거 역사에서, 부부 사이가 주종관계처럼 인식되었던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때에도 인격 존중과 질서가 동반됐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구약성경 시대에도, 사라가 아브라함을 가리켜 ‘주’라고 칭했습니다. 이것은 하인들이 주인을 부르는 것과 같은 칭호입니다. 구약시대나 중동의 잘못된 역사적 상황 때문이라면, 성경 자체의 올바른 의미로 재해석 되어야 합니다. ‘주’라는 단어를 인격 차별적인 의미로 볼 게 아니라, 존중과 질서상의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한다고 해서, 판단의식이 없이 종처럼 무턱대고 추종하겠습니까? 그리고 아내만 남편의 말을 따르라는 게 아니고, 남편이 아내의 말을 듣고 따라야 할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남편과 아내는 서로 같은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과 혼인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엄히 명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으로 인하여 신앙생활이 문란해질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의 교류와 혼인은 일소되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교인들은, 그런 것을 문제로 삼지도 않을 만큼 신앙이 오염돼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있긴 하지만, 다른 조건만 맞으면 신앙 문제를 따지지도 않는 이들이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신앙이 철저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런 상황에 대한 차선책이, 신자가 불신자에게 두려움과 정결의 행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현대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외모를 꾸며서, 그로써 상대의 눈을 끌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여자들이 얼굴 화장을 했으나, 요즘에는 남자들도 흔히 그렇게 합니다. 심지어는 남자가 여자처럼 꾸며서 다른 남자를 속이기까지 합니다. 정말로 지금 세상은 말세를 치닫고 있는 듯합니다. 본문에는, 금이나 아름다운 옷의 외모로 꾸미지 말고, 오직 마음의 온유하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 값진 것으로서,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한다는 의미는, 그처럼 내면의 단장을 요구한 내용입니다.
이 교훈은 아내뿐 아니라 남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합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무력을 행사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것은, 결단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것은, 여자를 보호하고 돕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남편들은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고,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여호와 경외의 지혜와 그리스도를 믿음이 모든 지식의 근간입니다.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τὴν ἐν φόβῳ ἁγνὴν ἀναστροφὴ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ἀρχὴ σοφίας φόβος Κυρίου(잠9:10), 그리스도를 믿음은 구원의 정결한 흰옷을 입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ὁ νικῶν οὕτως περιβαλεῖται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
지식을 따라 행해야 하는 궁극의 이유는,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가지지 않고서는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부인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게 타당한 일일까요? 그리스도가 입혀 주신 정결한 믿음의 옷을 입지 않고서 하는 기도가 효용성이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기도를 주님이 받으시고, 은총을 내려주십니다.
(2022년 4월 24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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