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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

쿠노Koonoh 2022. 6. 5. 15:51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베드로전서 317)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보복해야 속이 후련해지는 게 세상 이치입니다. 소위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을 보더라도, 그런 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차별적 태도를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면 신앙인에 대한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안타까운 게,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성향입니다.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하되, 남 앞에서 착한 행동 하나를 더 했다고 해서 그게 곧 참된 선행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선행의 궁극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모른다면, 의를 위한 고난을 감수할 수 없습니다.

 

철학적 논리로 교리를 설파했던 바울이 훌륭한 사도이거니와, 신앙의 핵심을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았던 베드로의 위대함을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베드로는 열정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한때 예수님을 부인하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차 성화(聖化)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도 감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본문은, 의를 위한 고난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복하시는 하나님개념을 선호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식(意識)이 성경 내용과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시편 성경을 읽다 보면 보복하시는 하나님을 말하는 표현이 자주 나타납니다. 그것은 믿음의 훌륭한 사람으로 알려진 다윗의 기도에서 공공연히 발견되는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성경과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약의 내용도 완전하게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악에 대한 보복이나 심판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서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은 우리는 오직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라는(벧전3:9) 가르침에 순응해야 할 것입니다. 모 인사(人士)를 매우 싫어했던 어떤 분이, “그가 천당에 간다면, 나는 그가 가는 천당에 가지 않으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존경 받는 신앙인이었으나, 그렇게 말씀하심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나의 구주(救主)’ 또는 나의 주()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라고, 흔히 고백합니다. 진정 그렇다면, 그리스도께 의지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온유하며 선한 양심으로 살되 고난도 감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거룩한 뜻입니다. 나에게 악행을 저지른 어떤 사람이 망하거나 심판을 받는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희망할 사항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희생을 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본다면, 그의 구원을 정말 믿는다면, 원수가 잘되도록 기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선을 행함으로써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요구를 하시는 셈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고난받기는 싫어합니다. 그것은 결단코 정당하지 못한 처사입니다.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어떤 경우에나 정당한 태도를 고수해야 그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신앙인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당하게 살도록 삶을 수련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불의한 자들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의 육체를 죽게 하였으나 영을 제압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리스도의 부활로 사람이 구원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구원은 시공(時空)을 초월한 영적인 현상입니다. 사람의 존재는 시공간을 의존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거듭난 생명은 영원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부활 생명의 표식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이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으로 살아가려고 항상 기도합니다. 그리스도는 만유 위에 계시는 하나님으로서 인생의 고난을 자처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원한 영광의 자리에 그대로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믿음으로 참여한다면, 육체의 고난을 탕감하고도 남을 영원한 영광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202265,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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