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설교

새로운 살길

쿠노Koonoh 2022. 10. 2. 15:54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히브리서 1020)

 

삶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희망입니다. 희망의 목표가 무엇이든, 그리고 그 목적의 가치가 크든 작든, 희망은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의 희망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딘가에 들어가려면 입장권이 있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의 보혈을 힘입어야 합니다. 예수를 통한 구원은 생명을 위한 완전한 길입니다. 그 길을 걸어감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고 목적지에 안전히 닿으려면, 개인의 확고한 믿음과 더불어 동행하는 이들의 협력적인 신앙 행위가 꼭 필요합니다.

 

확고한 소망과 믿음의 핵심이 무엇인지, 그리고 믿음의 동료가 함께 협력해야 할 것을, 본문은 명시(明示)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습니다. 자기 고향이 다른 데 비하여 발전하지 못했고 안 좋은 환경이더라도, 고향은 그립고 가고 싶은 곳입니다. 인간 영혼의 고향은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나라입니다. 그곳을 가리켜 거룩한 곳, 즉 성소(聖所)라고도 부릅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듯이, 사람은 성소를 향한 희망으로 살아가야만 정서적인 안정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자격의 증표는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많은 이들이 하늘나라 고향에 가고 싶어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면서도, 정작 그 문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의 자신감을 보이지 못합니다.

하늘나라 성소에는 휘장이 드리워져 있는데, 그 휘장을 예수님의 육체라고 했습니다. 휘장을 통과해야만 성소에 들어갈 수 있듯이, 예수의 몸이 흘린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음의 핵심적인 의미입니다. 모든 자물쇠에는 정해진 열쇠가 있습니다. 열쇠 없이 남의 집 문을 열려고 하는 자는 도둑이거나 파괴자입니다. 요한복음 101절에,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셨고, 양 우리의 문으로 드나들지 않는 자는 절도요 강도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412절에,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 외에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사람의 구원은, 절대로 하나님의 손에 달린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그리스도)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주관하는 대제사장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신약의 예배이고, 대제사장은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 의존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회개의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것의 실천을 위한 방안은, 소망을 굳게 하는 것, 서로 돌아보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 그리고 모이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유형의 교회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실천해야 할 방안을 소홀히 하여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탈락한 사람은 구원의 길에 다시금 들어서기가 오히려 어렵습니다.

악한 영은 사람의 영혼을 미혹하려는 사냥놀이를 계속합니다. 악한 영이 사용하는 기본 방법은, 소망을 가지지 못하도록 흔드는 작업입니다. 어떤 지경에 이르렀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그는 살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희망 있는 자는 죽어도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거나 사는 것은 육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1028절에, 예수께서 육신을 죽이고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이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25절에 의하면, 사람이 정작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 넣으시는 전능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전능하신 창조와 구원의 주님을 바라보고 의존하는 소망입니다.

 

소망은 개인의 내면적 바람입니다. 그와 동시에 성도 간의 격려와 협력 그리고 교회의 활동이 꼭 필요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지금이 말세의 끝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소망이 없어 보이고 코로나다 뭐다 해서 그 핑계로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는 것도 소홀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다른 모임이나 행사는 접어두더라도, 예배의 모임조차도 전혀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유형의 교회가 붕괴하면 무형의 교회도 약화할 것입니다.

 

(2022102,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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