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술에 취하여 숨으리라 너도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찾으리라” (나훔 3장 11절)
나훔 선지자는 기원전 7세기 말에,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습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서, 당시 앗수르는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강한 나라일지라도, 죄악과 교만의 성행으로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니느웨는, 일찍이 요나의 선포로 회개하여 심판을 면한 적이 있었으나, 세월이 흘러 다시금 죄악에 기울었습니다. 문명의 발전이 융성을 가져오지만, 그로써 나라가 영구적으로 존속하지는 못합니다. 본문에서, 나훔 선지자는 세속 나라의 멸망을 적나라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개인도 국가도 의의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는 한, 멸망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나훔은 노아몬을 예로 들며, 노아몬도 결국 멸망하고 말았음을 강조했습니다. 나일강 상류에 위치한 노아몬은 이집트의 수도이기도 했던 도시로서. 헬라인에 의하여 테베(Thebes)란 이름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노아몬은 물이 풍부한 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살려면, 물의 원활한 공급이 필수 조건입니다. 또한, 나라가 적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안전한 지형에 위치해야 합니다. 식수원과 외적의 방어를 위해서, 나일강은 노아몬의 긴요한 입지 조건이었습니다. 구스(Cush)와 애굽(Egypt)은 노아몬을 위한 강력한 기반 세력이었고, 붓(Put)과 리비야(Libya)는 노아몬과 동맹 관계에 있었습니다. 지리적 조건과 국제 정치적 상황에서 그처럼 좋은 조건이었음에도, 노아몬은 B.C. 663년에 앗수르 왕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에 의해 멸망되었습니다.
사람은 역경에 처했을 때, 도리어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발전합니다. 그러나 발전한 후에는, 자만과 방종에 빠져 삶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남의 나라 포로가 되면, 이전에 누려왔던 자유를 모두 잃고, 거지와 노예 신세로 전락합니다. 적(敵)은, 애지중지하는 자식들이라도 적당히 봐주질 않습니다. 존귀고 뭐고 간에, 과거의 영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 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이자, 하나님의 엄정한 다스림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나 있을 때 잘해야 하고, 초지일관 각성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마지막 심판의 때가 도적같이 임할 것이므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기름을 준비했던 처녀들은 신랑이 왔을 때 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으나, 준비하지 못한 처녀는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니느웨도, 멸망의 때에 방탕한 가운데 숨을 데를 찾고 피신할 것을, 나훔 선지자는 경고했습니다. 술 취함, 피난처를 찾음, 무너지는 산성, 연약한 장정들, 원수 앞에 굴복, 불타는 빗장, 이런 것들이 니느웨 종말의 비참한 모습입니다. 니느웨는 적에게 에워싸일 상황에 미리 대처했어야 했습니다. 식수를 준비하고, 산성들을 수축하며, 벽돌 가마를 수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려고 할지라도, 가마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삼킬 것입니다. 느치가 먹는 것처럼, 칼이 그들을 벨 것입니다. 방백과 장수들은 도망할 것입니다. 목자들은 잠을 자고, 귀족들은 누워 쉬며, 백성은 산들에 흩어질 것임을, 나훔 선지자는 예언하였습니다. 망한 나라를 회복할 길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은 창조주께서 주신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어렸을 때는 삶이 긴 것처럼 여겨져도,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 인생이 너무나도 짧다는 사실을 누구나 깨닫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는, 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얼른 알 수 있습니다. 쉼 없이 돌아가는 초침에 따라, 안 가는 것처럼 보이는 분침과 시침도 어느새 돌고 돌아갑니다. 에베소서 5장 16절 말씀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세월을 아끼는 삶이 되려면, 신중한 판단과 행위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뜻을 분별하고 이해하면, 성령 충만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믿음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찬송, 범사 감사, 피차 복종으로 성도 간 교류를 갖는다면, 세월을 아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창조주 하나님의 철저한 법입니다. 사람들은 은혜의 주님이라는 이유로, 잘못을 적당히 눈감아주실 것이라고, 흔히 착각합니다. 사형수에게 영원한 면죄부와 구원의 복권(復權)을 완전히 허락해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면죄받고 복권된 자가 방탕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는 아닙니다. 니느웨는 그동안 행패를 저질렀으므로, 멸망에 처한 이제 저들로부터 조롱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2023년 2월 5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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