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로새서 4장 2절)
이 설교의 주제는 ‘기도’입니다.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라는 제목은, ‘감사하면서 깨어 있는 기도’를 하라는 뜻입니다. 골로새서 3:18~4:1은, 그리스도인의 가정 또는 사회와 관련된 생활 교훈을 말하고 있습니다. 4장 2~6절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 그리고 복음 전파에 이롭도록 경건과 지혜로 행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입니다. ‘의와 공평의 실행’과 ‘기도’는 복음이 전해지도록 하는 기반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또한, 기도하면서 의와 공평의 경건을 나타냄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이 뿌리내리게 함은, 더욱 중요합니다.
공동의 생활과 개인적 신앙생활은 별개의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은 공동의 이익에 해를 끼칠 수 있겠으나, 개인의 올바른 생활은 복수의 전체에도 유익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사회의 상전과 하인은 같은 집안에서 생활하는 공동의 구성원이었습니다. 현대의 직장생활이, 그때는 집안 내에서 이루어지던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현대에는 노사(勞使) 간의 민주적 관계가 설정되어, 사주(社主)라도 노동자의 인격과 권한을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골로새서 당시의 하인은 상전에게 속한 노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바울 사도는, 상전들이 종들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하는 교훈의 요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상전이든 종이든, 창조주에게서 받은 인격의 가치는 각기 똑같습니다. 일 또는 사회적 관계에서 상전과 하인이라는 서열이 있는 것뿐이므로, 상전이라고 해서, 의와 공평이 없이 하인을 대우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상전이 하인에게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 상전을 그냥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종(slave)은 억울한 처우를 받아도, 불만조차 내보일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고 상전이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상전도 결코 무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명철과 지혜의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처형 때, 도망가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었던 제자들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를 잘하려면, 계속해서, 감사함으로, 깨어서, 해야 합니다. 기도를 잘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들이 주위에 많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식적이거나 유창한 언변의 기도를, 잘하는 기도라고 대개 생각합니다. 또한 긴 시간 동안이나 밤을 새워 하는 것, 또는 금식기도 같은 것을 두고서, 잘하는 기도라고 말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쉬지 말라는 것은, 멈춤이 없이 하라는 말인데, 행위의 기도를 멈춤이 없이 계속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은, 다른 일의 행동을 하면서도 마음 중심의 기도를 계속하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 따로, 행동 따로’, 이런 식의, 진실성 없는 기도는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기도는 언제나 감사의 마음을 바탕에 두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 생각에 따라 기도하고, 기도의 결론조차 스스로 내리곤 합니다. “이것은 안 될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서, 또는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채로 중얼거려 기도합니다. 그런 것은, 전능하신 주님을 믿고 따르려는 자세의 기도가 아닙니다. 올바른 기도는,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질 것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해답을 얻은 듯이 감사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또한, ‘깨어 있어’ 기도한다는 것은, 진정성의 기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도 생각은 다른 데 빠져 있거나 내용에 마음을 집중하지 않으면서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그 사실을 모르실까요? 그런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실 리 없겠지요. 겟세마네에서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따르도록 합시다.
바울 사도가 기도를 부탁한 목적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도록 전도의 문을 열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오직 그 일로,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아 매인 사람이었습니다. 복음 사역은 일면 현실을 등진 것으로, 매우 힘들지만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바울은 이방을 대하여 지혜롭게 세월을 아껴 행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소금으로 맛을 내듯이 성령으로 은혜롭게 말하면, 모든 일이 해결되고 전도하도록 주님이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2023년 2월 12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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