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주의 디카시 오롬스토리

봄을 부르는 한라산 중턱의 족은대나오롬

쿠노Koonoh 2023. 2. 17. 19:57
뉴제주일보 승인 2023.02.16 18:35
민오롬 정상에서 본 족은대나오롬.
 

제주시~서귀포 간 한라산 제1횡단도로 중간지점인 성판악을 8㎞ 남겨놓고 좌회전해 동쪽으로 들어서면 비자림로이다. 한국에서 아름다운 길 1위로 선정된 이 길에서 200여 m쯤 더 가서 삼거리가 나오고 우회전하면 무녜(봉개민)오롬-사려니숲길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무녜오롬을 오르는 것은 입춘이 지났으니 제주(변산)바람꽃과 복수초를 찾아보려는 것이요, 족은대나오롬을 관망해 보려는 것이다. 바라보니 겨울 끝인 족은대나오롬 골짜기에는 아직도 눈이 하얗다. 오뚝한 산체(山體)는 부끄러운 듯 보이나 단아한 굼부리가 오롯이 보인다. 입춘을 보낸 숲길에서 부끄럽게 낙엽 속에서 피어나는 바람꽃과 복수초를 만난다.

절물오롬이라 불리는 대나오롬은 제주시 봉개동 산 78-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절물오롬자연휴양림의 절물(대나)오롬은 치장한 귀부인처럼 잘 가꾸어졌다. 사람들은 절물자연휴양림 안에 있어 절물오롬이라 부르나 예전 제주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고 대나오롬이라고 불렸다. 큰대나오롬은 해발696.5m, 비고147m, 족은대나오롬은 해발656.7m, 비고120m이다.

제주시 자연휴양림에 위치한 절물(큰대나)오롬 산굼부리를 돌아 전망대에 서면 큰대나 굼부리 넘어 동쪽으로 족은대나오롬이 보인다. 하지만 무녜오롬에서 보다 감흥이 적다. 대나오롬 굼부리는 고로쇠·종남(때죽나무)·산딸낭(나무) 등의 슬픈 라목들 사이에 푸른 비자나무들도 가끔 눈에 뜨인다. 대나오롬 바닥에는 다른 수종은 보이지 않고 대부분 산죽들이다.

큰대나오롬 굼부리를 돌아서 탐방로 동남쪽 끝 벤치에 앉아서 한잔의 차를 마신다. 큰대나오롬은 이제까지 원형굼부리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제는 원형굼부리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대나오롬 굼부리에서 보면 양쪽에 굼부리로 올라가는 곳은 높다. 그러나 이제는 동남쪽 굼부리가 내려앉아서 더는 원형굼부리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오롬은 절물오롬으로도 불려졌다. 또한 대나오롬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대나(大儺)는 고려·조선시대에 궁중에서 섣달그믐 전날 밤에 역신을 쫓던 행사로 관상감에서 주관했다. 제관이 주문을 외우며 십이신을 쫓아내면 초라니는 머리를 조아려 복죄하고 각 방위를 맡은 이들은 소리치며 악귀를 몰아내었다’ 그러나 이는 대나오롬의 의미는 아닌듯하다.

대나오롬은 숨겨진 여인처럼 오뚝한 산체(山體)가 단아(端雅)해 보인다. 이 오롬들은 ‘크게(대大) 단아(端雅(아雅))’하다. 또는 단하(丹霞)봉, 단하(丹羅)악으로 불렸는데 이는 붉은빛 단(丹), 노을 하(霞)로 노을빛이 아득하다’는 뜻이다. 봉개민오롬 쪽에서 이 오롬의 저녁노을 보면 ‘단하/다나(丹羅)오롬은 ‘저녁노을이 마치 붉은 비단을 펼친 것같이 단아할 것이다’. 한 오롬이 두세 가지 이름으로 쓰인 것은 뜻으로 쓰인 게 아니라 소리음으로 표현된 것으로 본다.

단하/다나악(丹霞岳)은 제주인들이 예부터 불려온 음차일 것이다. 또는 답인악(踏印岳)으로도 불렸는데 답(踏)은 밟다·디디다·발판·신발·도장(인(印))을 찍다·박히다’는 뜻이다. 이는 ‘한라산 높은 곳을 디디고 들어간다.’는 뜻이리라. 몽골어 택진ДЭГЖИН의 우아하다·단아하다’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다라흐ДАРАХ’라 썼다. 예로서 ‘손도장을 찍다’는 ‘에르히ЭРХИЙ 다라흐’라 쓴다.

한국어로 쓰이는 언어의 절반 이상이 중국어의 소리음이듯 몽골어도 중국어에서 차용된 말들이 많다. 몽골어에도 순수한 몽골어가 있고 중국어를 차용하는 경우도 있다. 대나오롬의 대나도 단아/다나(端雅), 단하/다나(丹霞), 단라/다나(丹羅)라고 하는 한자를 음차한 몽골어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는 중국어로 쓰였다기보다 중국어를 음차한 몽골어로 보인다.

대나오롬 정상에서 본 필자의 견해는 ‘큰대나-족은대나’는 ‘대열을 지어 나란히(대열(隊列), 나열(羅列))해 있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멀리 동쪽의 제1열은 바눙오롬-족은지그리-큰지그리-봉개민오롬, 북쪽의 제2열은 족은노리손이-큰노리손이-봉개민오롬, 서쪽의 제3열에는 거친오롬-진물오롬-큰대나-족은대나, 서남쪽의 제4열은 족은개오리-셋개오리-개오리(오롬)가 4지창 끝에 걸려 있다. 그리고 4지창 아래 자루에는 성진이-태역장오리-쌀손장오리-불칸디오롬-예후오롬이 한라산(서쪽)으로 등이 휘어져 대열을 지어 나란히 있다.

대나의 봄은 복수초들이 눈 속에 피어나기 시작한다. 복수초가 질 때면 대나오롬 입구에선 노란 새우란 무리들이 피어난다. 그리고 산벗나무들이 피어날 때면 대나의 봄은 절정에 이를 것이다. 절물자연휴양림 내에는 장생의 숲길, 숫모르 편백 숲길, 너나들이길, 생이소리길 등 이채로운 길들이 많다. 가을로 가는 대나오롬에는 이별초·꽃무릇·산딸낭 붉은 열매가 고왔다. 소매에 스치는 바람, 아직도 찬 2월에 가냘픈 바람꽃처럼 족은대나는 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