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돔베오롬의 위치는 남쪽으로 서귀포시 남원읍, 북쪽으로는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4거리가 만나는 남조로 서쪽 비자림로에 있다. 주소는 조천읍 교래리 62~63번지(비자림로 522)이다. 돔베오롬의 면적은 117,259㎡, 둘레는 1275m이고 해발은 466m이다. 그러나 돔베오롬의 비고는 고작 36m 밖에 안 되는 낮지만 곱고 야무진 오롬이다. 필자는 비자림로를 수차례 오가며 늘 지나던 곳이나 돔베오롬을 탐사하게 된 것은 최근이다.
이 오롬은 리(교래리 옛 이름) 윗동네로 동북쪽으로는 리 알(아래)동네가 있다. 리는 조천면에서 제일 높은 산간마을이다. 조천읍 30개 오롬 중 17개가 리에 있는데 북서쪽에는 교래자연휴양림, 그 끝에는 큰지그리-족은지그리·바농오롬, 북쪽으로는 늡서리·방에-족은방애·민오롬·대천이오롬, 동쪽으로는 산굼부리·까끄래기, 남쪽으로는 말찻·물찻오롬 등이 있다.
돔베오롬은 ‘탐라순력도’·‘탐라지도병서’에 ‘궤악(机岳)’으로 쓰였는데 한자어 궤악(机岳)의 ‘궤’는 책상 궤(机)자로 발이 넷 달린 책상을 뜻한다. 또한 ‘제주군읍지’·‘제주지도’에는 조악(俎岳)으로 나타나는데 조악(俎岳)의 조는 도마 조(俎)로 쓰였다. 이는 도마·적대·제향 때 희생 도구를 얹어 놓는 높은 대臺(상)를 의미하기도 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돔베오롬으로 쓰였는데 ‘돔베오름’은 그 모습이 ‘돔베’ 같은 데서 유래하였다는데 ‘돔베’는 제주어로 한국어 ‘도마’를 가르친다. 그런데 돔베는 동베오롬→동배악(東背岳)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여기서 배(背)는 등 배(뒤), 등 쪽을 말한다. 또한, 돔바름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돔베오롬의 줄임말로 쓰이나 정확한 뜻이 전해지지 않았다.
몽골어에 툼(ТӨМПӨН)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대야·잔(盃)(배杯)를 뜻한다. 한국인(또는 제주인)들의 사용 언어 중에는 외국어+해석된 제주어(또는 한국어)가 많다. 어쩌면 언어의 사대주의 현상이다. 예로서 제주 빙떡은 한자어 빙+떡, 빵떡은 포르투칼어 빵+떡, 모찌떡은 일본어 모찌+떡으로 쓰인 것처럼 툼(ТӨМПӨН) 역시 몽골어 대야(잔)+배(잔)도 그 같은 경우다.
돔베오롬 굼부리는 둥그렇게 파인 잔(주배(酒杯)·주잔(酒盞))이나 대야와 같다. 또한 동쪽의 교래마을~남조로~가나안기도원에서 보면 상(돔베)를 닮았다. 제주도의 옛날 도마는 4개의 발이 달렸다. 한자로 궤악(机岳)의 궤(책상) 역시 4개의 발이 달렸다. 동배악(東背岳)은 동쪽 배후(背後)에서 보면 제(상)과 닮았는데 그 뒤는 마치 ‘제향상에 술잔을 올린 것 같다’는 말이다.
옛날 몽골에는 각배라고 하는 뿔로 만든 술잔이 있었다. 대부분의 각배는 그릇 받침과 함께 상에 올려진다. 우각형배(牛角形杯)라는 게 있는데 이는 소뿔 형태의 술잔이다. ‘각배角杯’는 짐승의 뿔로 만들어진 술잔이다. 그러나 각배 자체에 다리가 붙어 있는 경우는 없지만 토기로 만들어 질 때는 네 개의 발도 함께 만들어진다.
돔베오롬의 명칭에 따른 변화는 확실하다. 몽골어 ‘툼(ТӨМПӨН)’은 ‘다리가 네 개인 젯상’, 또는 ‘다리가 4개 달린 잔(주배(酒杯))’과 같다는 말이다. 600~700년 전, 아마도 몽골 이민자들은 백중날 같은 때 이 굼부리에 모여서 가축을 위해 백중제 때 축제로 모였을 것이다.
돔베오롬은 이제껏 원형굼부리로 분류됐으나 지금은 그 누구도 이 오롬을 원형굼부리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오롬 서쪽이 이미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녕 삿갓오롬처럼 말굽형으로 바뀌었다. 돔베오롬은 측(기생)화산으로 한라산 분화구 등성이에 생기는 작은 화산으로 기저에 있는 마그마가 약한 지반을 뚫고 나와 분출되며 이 오롬도 생겼을 것이다.
지금 돔베오름 굼부리는 황세(제주 초가를 덮는 띠풀)들이 좋았던 것 같다. 황세가 말끔히 베인 자리는 꽤 넓어 보인다. 굼부리를 한 바퀴 돌아보니 모두 여산 송씨, 또는 그 부인들 묘지다. 제주도 인구가 3만일 때 몽골(원나라)의 16개 성씨들이 제주로 이민 와서 살게 된다. 송씨들도 그 16개 성씨 중 하나로 교래리를 중심으로 목축하던 목호들로 여겨진다.
이 오롬 서남쪽 사면에는 소나무들이 심어지고 동북쪽 사면에는 자연림이 울창하다. 특히 담팔수가 많고 물푸레·비목·졸참·예덕·서어나무·참개암나무·굴거리나무들도 보인다. 특이한 것은 솔비나무들이 꽤 보인다. 솔비나무는 섬유질이 많아서 불을 땔 때 불쏘시개로 쓰이던 나무다. 그 아래로는 관목인 사람주나무와 꽤꽝나무들이 뒤엉켜서 자란다.
봄이 오면 오롬 주변의 올벗·산벗나무들이 조랑조랑 피어 열린다. 지난봄, 비자림로를 지날 때 하얀 꽃이 고와서 차를 멈추었다. “산기슭에 왠 꽃인가?” 살펴보니 팥배나무 꽃이다. 팥배나무 화사한 꽃이 지는 늦은 봄이면 때죽나무 꽃으로 돔베오롬은 또다시 화려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