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쳉이오롬은 안덕면 서광리 943번지로 마을 가운데 있다. 오롬의 높이는 해발 246.5m, 비고 62m의 펑퍼짐한 오롬이다. 이 오롬을 북쪽 솔(남송이)오롬에서 바라보면 기지국 안테나가 보이는 보편적인 오롬의 형태를 갖추었다. 동서쪽으로는 계단을 타고 정상까지 오를 수 있으며 동쪽과 서쪽 계단 옆으로는 시멘트로 된 길이 있어서 오롬 한 바퀴를 순환할 수도 있다.
북쪽의 솔(남송이)오롬 정상에서는 광쳉이오롬 꼭지만 보인다. 또한, 광쳉이는 산지 지번이 아니고 일반 지번인 것처럼 이 오롬 남쪽으로는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넙게오롬순환로로 이어진다. 오롬 정상에서는 원물(막자)오롬·당오롬·도너리오롬 남쪽에는 그 옛날 물이 귀한 제주에서 이 동네 사람들이 먹고 마시던 식수원인 넙게물이 있다.
이 오롬은 서광리가 고향인 박영식씨와 탐방하는데 내려오던 길에서 만난 이 마을 출신 조영신씨의 만남도 큰 수확이다. 그는 우리가 서쪽 계단 길로 내려와 윗 샘·아랫 샘을 사진 찍는데 “이 물이 아니라 우리 어머니 때 물허벅을 지고 날랐던 샘이 위에 있다”고 하여 샘의 원천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길이 “우리가 어렸을 때 학교를 다니던 길이다”라고 하였다.
필자는 넙게오롭을 탐방하기에 앞서 북쪽의 남송이오롬에서 넙게오롬을 관찰하고 서광리 마을을 관찰한 뒤 광쳉이 오롬의 어원과 유래에 대하여 오랫동안 살펴보았다. 서광리는 광쳉이오롬 동서의 중산간 마을인 서광동리와 서광서리로 나뉘었다. 서광리는 600여 년 전 ‘(ㅈ+아래아)단이곶’ 일대에 고씨·박씨·강씨들이 들어와 살며 광챙이 마을이 생겨났다고 전하여진다.
(ㅈ+아래아)다니는 19세기 때까지 쓰이다가 19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광쳉이라 하였고 이후 동광쳉이는 동광리가 되었다. 17세기 ‘탐라도’·‘중보탐라지’·‘대동여지도(1861)’에는 조(ㅈ+아래아)다니·광쳉이라고 불린 것 같다. 이후 광챙이는 ‘제주삼읍전도(1872)’·‘대정군지도(1872)’·‘대정군읍지(1899)’ 등에 등장하다가 1905년에는 광청리와 서광처리가 나뉘고 이때 서광리(西光里)의 빛 광자는 넓을 광(廣)자로 바뀌었다. 조선조 때는 광해악(廣蟹岳)으로 불리다 그후 ‘넙게오롬’으로 불려졌다.

최초의 제주는 온 섬이 나무들로 우거졌었다. 몽골이 제주 접수 후, 몽골 이민들어 오며 제주도는 목축을 위하여 중산간 일대가 불 테워지기 시작하였다. 몽골어 솔(СУЛ·남송이)오롬은 ‘묶지 않은·잠그지 않은·풀려 있는·열려 있는’이란 뜻인데 몽골들은 북쪽 솔(남송이)부터 광챙이까지를 불테웠는데 몽골인들은 이렇게 불태워 진 곳을 ‘창갈라흐(ЧАНГАЛА|Х)’라 했었다.
이 말은 ‘죄다·엄격히 다루다·크게 하다·조이다·꽉 묶다’라는 뜻이다. 또한 이 말(~бүсээ)은 ‘허리띠를 졸라매다·엄격히 다루다·호되게 하다·심하게 대하다·(소리를) 크게 하다’라고 할 때 쓰이는 말이다. 이런 뜻에서 볼 때 ‘(ㅈ+아래아)다니’는 ‘죄다·조이다’라는 해석된 말로 쓰이다가 그 뜻을 확실히 하기 위해 후에는 해석된 넓을광(廣)자와 창갈라흐(ЧАНГАЛА|Х)의 첫글자 ‘창’을 합쳐서 ‘광창이’라는 말을 명사화하여 ‘광챙이’로 와전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창갈라흐(ЧАНГАЛА|Х)’는 몽골인들이 제주인을 대할 때 모습과 같다. 그들은 본토인인 제주인들에게 오히려 큰소리로 ‘호되게·엄격하게·죄고·조였을 것이다.’ 실제로 위로는 솔(남송이)오롬부터 아래로는 해변에 접한 광챙이까지를 경계로 중산간를 불태워 초원으로 만들어 목축을 시작하였다. 제주인들은 광챙이(넙게)물 주위에 마을을 이루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광해악(廣蟹岳)이라 불린 것은 불태워진 중산간 일대에서 볼 때, 불탄 곳과 불타지 않은 곳의 얼룩얼룩한 모습이 마치 바다의 게의 모습과 같아 보여서 조선시대에 와서 넓은 초원의 얼룩얼룩한 그 모습이 마치 바다 물속의 게(해·蟹)와 같이 보여서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오롬의 이름보다 들판의 이름이 오롬의 이름으로 쓰인 경우로 보인다.
필자는 동쪽의 시멘트 포장길이 아닌 계단을 타고 동쪽 탐방로를 올랐다. 계단목은 썩어지며 내려앉는데 서쪽 계단목은 이미 썩어 오간 데 없고 좌우에는 삐죽삐죽 솟아오른 철근 쇠들만이 드러나 있다. 오롬의 비탈진 탐방로에는 상강을 맞는 제주의 엇갈린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참식나무·생달나무·제주산 상록수인 가시나무들은 청청 푸른 잎이다.
이 나무들은 계절이 바뀌고 눈이 내려도 푸른 잎일 것이다. 떨어진 상록 가시나무·굴피나무들이 바닥에 깔렸는데 제주 천선과·예덕나무들은 아직도 누런 잎이다. 숲 아래는 한 뼘이나 됨직한 자금우가 널리 퍼졌다. 한경면에서는 저지오롬이 둘째고, 넙게오롬이 제일 많은 것 같다. 마치 푸른 비단을 깔아 논 듯, 푸르고 부드러운 모습이 서광리 사람들처럼 곱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