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주의 디카시 오롬스토리

오드((УД))-신(ШИНЭ)은 ‘버드나무 漢川이 새롭다’는 뜻

쿠노Koonoh 2025. 2. 1. 11:09
 삼다일보 승인 2025.01.30 17:06

서북쪽에서 본 오드싱 정상.jpg
 

오드싱오롬은 제주시 오등동 1544번지에 있다. 해발 206.8m, 비고 56m, 둘레 1862m, 면적 16만9387㎢로 작지 않은 편으로 ‘오두싱이’라 전해지기도 한다. 이 오롬은 제주 최초로 오롬을 등재한 이원조 목사(1841년/헌종 7년~1843)의 ‘탐라지초본’ 제주목 43개에 오롬 중에는 그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조선조 거꾸로 네 번째 왕(순종←고종←철종←헌종)으로 본다면 현재 불리는 이름은 조선조 말이나 일제 강점기 때 생긴 이름일 것이다.

몽골어 ‘오드(УД)’는 ‘버드나무’라는 말인데 ‘오드-테이흐(УД-ТАЙХ)는 “신을 숭배하다”는 뜻이며 올-테이흐는 “산을 숭배하다”라는 말로서 ‘무당들이 냇가에 버드나무를 세워 놓고 끈을 엮어서 놓고 굿을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싱은 몽골어 신(ШИНЭ)의 와전인 형용사로 ‘새롭다’라는 뜻이다. ‘새 신~жил은 싱싱한·신선한’이며 옹기오드(ОННИУД)는 몽골의 한 종족의 명칭이고 오그니오드(ОГНИУД)는 내몽골자치구의 한 종족의 명칭이다. ‘오드신’은 몽골에서 제주에 이민해 온 이들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됨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몽골어의 오드-아이막(Од-аймаг)의 ‘아이막’은 고유명사로 몽골의 주(州·한국의 군(郡)정도 크기)를 말한다. 이는 고려시대 몽골인들이 제주로 이민을 오며 동(東)·서(西)아이막으로 나눈다. 이런 뜻으로 보건대 오드-싱(УД-ШИНЭ)은 두 아이막이 나뉜 곳이다. 오드싱은 옛날에는 소풍지로 많이 쓰였다는데 이 오롬 동쪽은 병문천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한내(漢川)라는 큰 내(川)가 흐른다. 그래서 병문천 동쪽은 동-아이막, 병문천 서쪽은 서-아이막이 된 것이다.

오드싱 정상으로 나가는 길

한 내는 제주에서 제일 큰 내였기에 클한(漢) 자字를 써서 ‘한내(漢川)’라 불렸다. 또한, 한 내를 거슬러 가면 유명한 방선문(訪仙門)이 있는데 그야말로 ‘신선(神仙)이 찾아오는 문(門)’이란 명칭이 붙은 곳이다. 고려조 때 이곳은 영주십경(瀛洲十境) 중 세 번째인 ‘영구춘화’로 이름난 곳이며, 영주목(瀛州牧)에서도 목사(牧使)와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봄놀이하던 유명한 곳이다.

이처럼 병문천-한천이 흐르는 천변(川邊)에는 버드나무가 우거졌다. 만주어로 이 말은 부루허허인데 길림성 연변자치주 주도인 연길시를 남북으로 나뉘는 강(江, 또는 하(河)=중국어 발음 허)을 ‘부루허’라고 하는데 이는 ‘버드나무가 우거진 강변’이란 말이다. 조선족들은 여기서부터 점차 나뉘는데 필자는 흑룡강성 강변에서 노래하며 춤추는 노인들을 보면 눈물 흘렸었다. 그들은 “노들강변의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서 메어나 볼까…”라 노래한다. 노들섬은 한강의 섬으로 버드나무가 온 섬에 가득하다, 청송 주왕산의 주산지에는 물에 잠겨있는 왕버들 나무를 볼수 있는데, 주산지나 부루허(河)나 주산지나 할 것 없이 강마다 버드나무는 심지 않아도 우거지니 한천·병문천도 다를 게 없었다.

12월이 되어도 춥지 않은 어느 겨울날, 오드싱오롬을 찾았다. ‘제주아열대연구소’에 이웃한 오드싱오롬은 영도·그린빌라 등의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데, 제주도 내 신문과 방송에도 자주 등장하는 뜨거운 곳이나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니 조용하다. 포장도로인 서편 오롬자락으로 올라가니 억새·삼수세기줄기·떨기/산딸기·가시덩굴·잡초가 어우러져 을씨년스럽다.

남쪽 돌담 가에는 삼나무가 심겼는데 참식·삐죽이 나무·한 그루와 녹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포장된 서쪽 길로 나서니 누런 몰(ㅁ+아래아+ㄹ)쿠시(먹구슬)열매가 조랑조랑 흔들리나 오드싱오롬은 철조망에 갇혀서 말이 없다. 북쪽으로 갈수록 골짜기는 점차 심해진다 싶더니 오롬은 점차 높아지며 빡빡한 오롬 정상과 달리 아래로 갈수록 붉게 물든 마른 고사리들이 가득하다. 조금 더 북쪽으로 내려가니 제주시정부에서 관리하는 조경수들이 보인다.

날씨가 좋다면 아마도 푸른 하늘 아래 한라산과 서녘 바다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려 시기 모(ㅁ+아래아)쉬(牛馬)를 먹이던 오드싱오롬은 이제 마을 중에 자리를 잡게 되어 까마득하게 잊혀진 오롬이 되어 간다. 수년 내로 필자의 이 이야기도 옛 얘기가 될 것이다. 바라기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새로 태어나기를 바라나 그 장래를 알 수 없으니 필자의 마음은 괴롭고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