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紗羅)오롬은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산2-1번지에 있다. 북쪽으로는 제주시 조천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원읍 5개 오롬인 물오롬/괴팽이·東물오롬·성널오롬·논고오롬 중에서 가장 높고 제주도 내 오롬들 중 백록담을 제외하고는 최고봉에 산정 호수를 가지고 있다.
사라오롬 두 곳 중 한 곳은 제주시 ‘사라봉(烽)오롬’이요, 또 한 곳은 남원읍 사라오롬이다. 조선조 때 제주목사 이원조(1841년~1843년)는 ‘탐라지초본’에서 처음으로 제주 오롬을 기록했는데, 제주목 사라(봉)오롬의 기록은 있으나 정의현(남원)의 사라오롬은 기록에 없다.
사라오롬은 해발 132.47m, 비고 150m, 둘레 2.481m이다. 한라산국립공원에 속하는 남원읍의 세 오롬(성널·입석·논고오롬)은 여의도 면적의 수십 배가 되는 광대한 면적이다. 사라오롬을 탐사하려면 한라산 제1횡단(5·16)도로 중간에 있는 성판악에서 출발하는데 탐방 허가(인터넷)를 받아야 성판악(한라산국립공원 입구)에서 탐사를 시작할 수 있다.
2024년 늦가을, 대전에서 제주살이를 오신 김교수씨는 인터넷으로 한라산 탐방 허가를 받고 필자와 동행하자고 하여 동트기 전 탐방 길에 올랐다. 우리는 성판악에서 숲길을 따라 사라오롬을 넘어 진달래밭을 거쳐 백록담까지 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공원 측에서 큰바람이 불어 진달래밭까지만 갈 수 있다 하여 숲길을 따라 사라오롬으로 향하였다.
사라오롬 길은 이미 푸른 잎이 거의 떨어져서 앙상한 나뭇가지들 뿐인데 굴거리나무는 겨울로 가는 잎을 아래로 떨구었는데 노가리 나무와 함께 종종 푸른 빛이다. 또한, 아직도 떠나간 가을을 붙잡고 있는 듯 참빗살나무 열매와 이파리가 드문드문 붉은빛이나 성판악에서 출발하는 오롬 길 탐방로는 온통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이 만추의 향연을 벌인다.

사라오롬에 다다를 무렵부터 안개가 오락가락하더니 가파른 등성이를 오를 때는 세상이 온통 뿌옇다. 그러나 마침내 안개 속에 사라오롬 정상에 선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사라오롬을 등정할 때는 중간에만 잔잔하더니 지금은 만수 되어 탐방로 밖에까지 찰랑거린다. 물이 가득 찬 호수는 신비스럽다. 한 자락 안개가 잠깐 열렸다가 눈 깜짝할 새 닫혀버렸다.
제주에는 한라(山)·탐라(島)사라(烽)·아라(洞)·오라(洞) 등 나(라·羅/拏자)가 많다. 한라(漢拏)의 나(拏)는 붙잡을 나(拏)로 붙잡다·비비다·뒤섞다는 뜻과 ‘은하수를 붙잡다’는 뜻이다. 한라산은 ‘은하수를 붙잡은 큰 산’이란 뜻이 된다. 탐라(耽羅)의 라(羅)는 ‘새그물 나 자(字)인데 제주는 조선조 때 탐진(耽津·현재 전남 강진(康津)) 앞 바다에 펼쳐진(벌려진) 섬’이란 뜻이다
사라·아라·오라는 새그물 나(라·羅)자로 쓰였으나 이 역시 음차(音借)이고, 나(羅)는 나한(羅漢)의 나자인데 어떻게 이를 증명할 것이냐?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필자의 소견에 ‘나(라)’는 나한(羅漢·luóhàn)이라는 의미로 불교에서 말하는 ‘라한(羅漢)’의 준말이다.
사라의 몽골어 나프완(няпваан)은 불교 입적의 해탈(解脫:번뇌와 속박에서 벗어나 俗世의 근심 없는 상태)에 이르는 열반(涅槃)의 길로 번뇌(禍·欲望·誘惑·苦痛)에서 벗어난 영원한 진리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사라오롬의 ‘사라’는 몽골어와 무관해 보인다. 네이버 사전에 사라는 산스크리트어 살라카(śalākā)의 중국어 음차에 온 말이다. 이를 해석하면 사라는 살라카의 제주적 표현이거나, 범어 ‘살’과 ‘라’라는 한자어의 조합으로 역전(驛前)을 ‘역전앞’이라 말하는 경우와 같은 언어의 사대주의적 표현일 수 있다.
중국어 사전에서 사라는 열반과 동의어이다. 불교에서 적멸궁(寂滅宮)은 불상을 모시지 않은 곳이다. 일천 년 전 제주도민의 영적 세계는 남방불교와 샤머니즘이었다. 볼레오롬 존자암·삼양오롬 불탑사 등은 불당이 있으나 사라오롬의 사라는 불당이 없어도 적멸궁 같은 기도(묵상)처로 보인다. 그 증거가 곧 ‘사라오롬’이라는 명칭이다. 영천오롬·성불오롬도 불당은 사라져도 명칭이 전해진다. 남방불교 스님들은 천지 간에 원기(元氣)와 도의(道義)를 찾고자 했을 것이다. 그들은 열반을 위해 사물에서 해방되어 넓고 크게 사라(열반)되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그 옛날 발타라 존자의 후예인 스님들은 열반하여도 속세의 상념이 일면 사라오롬을 오르며 묵행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사라’라는 이름이 생겼을 것이다. 스님들이 땀 흘려 오롬 정상에 이르러 염불할 때 열반(사라)하기를 바랐는데 기독교적으로는 거듭남을 얻기 위한 것이다. 갑남을녀(甲男乙女) 중생이라도 사라오롬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체험하게 되는 오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