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설교

준비하는 일이 많아

쿠노Koonoh 2020. 2. 2. 16:22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누가복음 1040)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는, 죽은 상태로 무덤에 있다가 되살아난 나사로의 누이들입니다. 그들 가족은 예수님을 극진히 모셨습니다. 음식준비로 분주한 마르다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에 열중한 마리아의 행위는, 각각의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결론적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압니다. 마르다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교훈을 받으려는 것이 이 메시지의 목적입니다. 왜 마르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일까? 이렇게 의아해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가운데 마르다가 많이 있겠고, 그들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 삼위 하나님의 聖子이시면서 人子로 세상에 계셨습니다. 그는 사람들과 더불어 대화하셨고 생활하셨습니다. 나사로의 가족과는 아주 각별하게 정을 나누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의 무덤에 이르러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셨습니다.(11:35)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성자의 능력을 보이셨을 뿐 아니라, 고난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도 그는 나사로의 집에서 가져온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나사로의 가족과 특별하고도 절친한 관계를 가지셨던 것입니다. 일반생활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가지는 친분관계는 서로에게 커다란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그런 관계를 가졌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참으로 행복한 이들이었습니다. 사람들끼리도 그런 좋은 관계를 만들어,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 날은, 베다니 동네에 들르신 예수님을 마르다가 영접하여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둘은 자매간이었지만 서로 다른 성격을 지녀, 언니는 대접하는 일에 힘쓰고 동생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사람의 성향은 하나님이 부모를 통해 각기 다르게 주신 것들이므로 개인의 주관적 입장에서 호불호를 따질 수는 없습니다. 어떤 성향이든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지만 않는다면 그것을 잘 살려서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따라서 부지런히 대접하려는 마르다의 성향도 좋고, 마리아의 특성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에서 자기입장만 주장하는 태도는 불화를 일으킬 소지가 큽니다. 마리아의 태도는 충분히 그럴만했습니다. 그래서 분주했던 마르다는 동생의 비협조가 불만스러워, 동생이 자기를 돕도록 예수님께 요청하였습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십니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게 하소서.” 이 요청을 들으신 예수님은 두 가지 내용으로 대답하셨습니다. 마르다의 문제점을 지적하셨고, 마리아의 입장이 중요하다는 점을 말씀하셨습니다. 식사대접을 위하여 너무 많은 신경을 쓴다는 게 마르다의 문제였습니다. 그 좋은 일을 하면서도 마르다는 잘못을 지적받았던 것입니다. 교회에는 많은 봉사자들이 있어서, 그들은 헌금과 음식과 몸의 활동 등으로 열심히 수고합니다. 사회적 봉사활동으로 말미암아 교회에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전체를 즐겁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명심하면 더욱 좋겠습니다. 아쉬운 일이지만, 음식은 몇 가지 또는 한 가지만 준비되어도 괜찮습니다. 예배에 방해가 된다거나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마리아는 칭찬을 받는 입장에 섰습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 말입니다. 여기서 좋은 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좋은 편이라는 답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마리아의 입장이 옳다고 예수님은 판정을 내리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 답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다의 직무가 소용없는 일은 아닙니다. 성도의 교제와 교회활동을 위한 봉사는 귀중합니다. 그러나 예배에서 헌금과 봉사가 귀중하더라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우선하지는 않습니다. 예배를 중시하고 말씀듣기에 소홀하지 않으면서, 친교봉사에 힘쓰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202022,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

'한글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향유를 부었느니라  (0) 2020.02.16
죽었더라면 좋을 뻔  (0) 2020.02.09
직분을 행하게 하라  (0) 2020.01.26
예수의 생명을 나타내려  (0) 2020.01.19
범죄 하지 않게 하려  (0) 2020.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