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6장 6절)
본문에서 무엇을 두고 합당하다고 말한 것입니까? 피 흘린 자들이 받을 보응을 가리켜, 천사가 “합당하다”고 말했습니다. 그야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우리가 지금 새삼스레 그 말에 대하여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연한 게 오히려 당연하지 않게 취급당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극적인 불상사가 그렇게 빈번히 나타나고 그것이 대수롭지 않게 인식되는 상황으로 보아, 세상이 거의 종말에 이르렀나봅니다. 옳습니다, 지구의 운명은 거의 종말에 가까웠습니다. 과학적, 인성적, 환경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자명한 일입니다.
하늘나라 성전에서 일곱 천사를 향해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쏟으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진노의 일곱 대접은, 죄악이 성행하는 마지막 세상에 내려질 총체적 심판입니다. 첫 번째 쏟아진 대접에 의하여 확인된 대상은,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온갖 우상을 섬기며 사는 무리입니다. 둘째 대접의 심판 대상은 바다 가운데 있는 모든 생물입니다. 그 대접이 쏟아졌을 때 바다의 물이 피처럼 변했습니다. 그것은 출애굽 전에 내려졌던 첫 번째 재앙과도 같았습니다.
바다의 물이 피로 변할 때, 피를 먹게 되는 생물들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보여줍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고 피를 흘리게 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셋째 대접이 강과 물 근원에 쏟아지자 역시 피가 되었습니다. 강과 물 근원이란, 바다에 이르는 물의 出源(源泉)을 일컫습니다. 바다는 모든 것이 흘러들어 머무르는 곳으로, 불의한 무리의 집합이고, 강과 물 근원은 무리를 불의로 호도(糊塗)하고 이끄는 거짓 지도자들을 상징합니다. 갈멜 산상에 모였던 바알의 선지자들이 모조리 처단을 당했듯이, 거짓을 진리인 것처럼 백성에게 가르친 이단의 지도자는 심판에 처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도자들이라도 천사에게서 도망할 수 없듯이, 누구나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면하지 못합니다.
또한 천사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가리켜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분”이라고 칭했습니다. 사람의 생명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그 사이에 진행과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행은 변화를 의미합니다. 세상 것들은 모두 변화합니다. 세상에서는 무엇이나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고도 거룩하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유한한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의 성령 안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비밀입니다.
본문 6절은, 피 같은 물을 먹음으로써 생물들이 죽게 된 사실을 해석해 주는 내용입니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입니다.” 사탄과 이단의 괴수와 그 지도자들뿐 아니라 따르는 무리가, 모두 형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나 언제든 합당합니다. 그가 세상을 지으셨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사람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심판의 상황을 맞을 때, 우리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요? 이 때에도 사탄은 자기변명을 늘어놓게 합니다. 그리고 불손한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하도록 유도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이기적 욕심과 미련한 술수가 들어 있습니다. 사탄은 인간을 농락하는 데 그토록 능수능란한 반면, 사람은 어찌도 그렇게나 어리석은지?
이제는 해결책을 찾을 단계입니다. 결론적인 답은, 성령의 사람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부르짖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성령의 사람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설교를 들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읽을 때 성령이 가르쳐주시는 성경을 읽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변화하고, 사탄의 궤계를 물리칠 수도 있게 됩니다.
(2020년 3월 15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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