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민수기 25장 9절)
하나님께서 한국과 한국교회를 위하여 징벌의 심판을 하시건만, 잘못을 회개하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남을 향해 공격하고 비난하는 소리는 여전히 귀를 시끄럽게 합니다. 비판과 싸움이 있음으로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의 한국 상황은 아무래도 지나치게 비정상인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염병의 심판을 받았듯이, 우리는 얼마나 더 큰 심판을 받아야 할까요? 회개하는 것조차, 그 손가락이 모두 상대를 향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를 원하셔서 심판하시고, 오직 자기의 죄를 고백하도록 바라십니다.
바이러스의 정체를 찾아내지 못해서 코로나19가 더욱 위험스런 질병이라 하더라도,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죄를 회개하지 못하는 우리 상태입니다. 그러나 징계의 채찍을 맞다보면 더디더라도 조금씩 나아지긴 하겠지요.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왔습니까? 국회, 정부, 정당, 법원 등의 국가 정치기관 중에서 어디든 가릴 것 없이 부정적인 싸움으로 지내왔습니다. 언제나 나는 잘했고 너희는 틀렸다는 주장만을 해왔습니다. 교회도 다를 바 없이 그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반사회가 그렇다면 교회만이라도 안 그랬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세속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게 없었습니다. 아직도 여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징벌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싯딤에서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방 여인들과 더불어 우상에게 제사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사탄은 백성들로 하여금 이방 여인과 연애하도록 미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여호와만을 섬기고 그 계명을 따라 살도록 언제나 요구하셨습니다. 그것을 바꾸어 생각하면, 사탄은 이스라엘을 미혹하여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수작했다는 뜻입니다. 사실내용은 그렇게나 간단합니다. 그 목적을 이루고자 사탄은 인간의 성욕이나 명예 또는 인정이나 재물 같은 일상적인 도구들을 이용합니다.
죄의 회개를 위하여 두령들의 목을 달고, 바알브올에게 속했던 자들도 죽이라고 하나님이 명하셨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회막 문 앞에 모여서 자기들의 지은 잘못 때문에 통곡하였습니다. 회막 앞에 모인 백성들의 울음은,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와 엎드린 성도들의 회개하는 모습입니다. 나라에 어떤 문제가 생겼거나 사람들의 죄가 성행할 때에 그리스도 교회가 앞장서서 하나님께 나아와 눈물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할 일은 하지 않은 채 남을 헐뜯고 혼란을 부추기는 행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질서를 지키며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자기주장을 펼치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저 툭하면 쌈질이나 해대는 행위는 보기에 부끄럽고 안타깝습니다.
엄중한 형벌이 선고되고 회개의 통곡이 있는 중에도,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와서 장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시국이 어떠한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다만 성욕을 채우고자 백성들의 시선도 무시하고 장막에 들어갔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증손인 비느하스가 일어나 창을 들고 장막에 따라 들어가 그들의 배를 꿰뚫어 죽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에게 번지던 염병이 그쳤습니다.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아, 그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역사의 한 장면입니까? 나라와 백성이 이토록 전염병과 어려움에 시달릴 때, 우리 각자는 자기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회개 자복의 기도를 드립시다. 그리고 오직 자기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합시다. 그것만이 나와 이웃과 나라를 살리는 길입니다. 죄를 없앰으로 백성을 구한 비느하스는 평화의 언약을 받았습니다.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이 주어졌습니다. 구약시대 아론과 그 자손들은 완전한 제사장의 임시적 표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구원하는 완전한 대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모든 사람은 예수를 믿음으로써 영원한 구원에 이릅니다. 나라가 어렵지만, 위로하고 돕는 용기와 지혜로 새로운 발전을 이루도록 기도합시다.
(2020년 3월 22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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