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주의 디카시 오롬스토리

한라산을 머리에 이고 서귀포를 펼쳐 놓은솔(ㅅ+아래아+ㄹ)오롬

쿠노Koonoh 2022. 9. 23. 10:49

뉴제주일보 승인 2022.09.23 00:35

솔오롬 서남편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서귀포 앞바다에 떠도는 섬들이 보인다.

솔(ㅅ+아래아+ㄹ)오롬(이하 솔오름)은 서귀포시에서 제일 북쪽에 있는 산록남로에서 오를 수 있다. 서귀포시 동흥동 산7번지에 위치한 솔오롬 정상에 서니 한라산이 바로 눈 앞이다. 푸른 하늘 아래 흰 구름으로 터번을 둘러쓴 한라산 왕관릉이 보인다. 그리고 그 왕관릉 절벽 아래로 선작지왓 남쪽의 방애오롬형제(동홍동 산1번지)들인 웃방애오롬(73m), 방애오롬(129m), 알방애오롬(85m)이 보인다.

50여 년 전, 서귀포에 잠시 살 때 모(ㅁ+아래아)시(마소)들이 다니던 오솔길을 따라서 솔오롬을 올랐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산록남로 상에 주차장이 있고 탐방로 입구도 있다. 그러나 입구 동쪽에서 200여 m 더 가서 산 쪽으로 난 좁은 시멘트 길을 따라가면 솔오롬 정상으로 바로 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탐방로가 아니니 탐방객과 차량진입을 금한다’라는 서귀포시장의 경고판이 서 있는데 바로 아래(서쪽)로 보면 진입구가 있으니 그 곳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화오롬 북동쪽을 끼고 거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은 아는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이다. 북동쪽 정상에는 나무 테크로 만들어진 꽤 넓은 전망대가 있다. 북동쪽 전망대에 서서 보면 위 북쪽으로는 한라산 정상이 보이고 좌쪽으로는 멀리 몽실몽실한 제주오롬 군락들이 보이고 바로 앞쪽으로는 부채살처럼 쫘악 펼쳐놓은 서귀포 앞바다에 지귀도·제지기오롬·섭섬·문섬·범섬들이 떠있다. 그리고 그 옆 쪽으로는 각시바위·고근산오롬 등도 내려다 보인다.

솔오롬 굼부리는 서귀포를 시내를 바라보는 남향으로 열려 있다. 북동쪽 봉우리 전망대에서 좁은 오솔길을 걸어서 남서쪽 봉우리를 향하여 걷는다. 솔오롬 굼부리에도, 둘레길 비탈에도 솔오롬 수풀은 대부분 30년 쯤되는 곰솔(해송)들이고 사스래피·동백나무도 조금씩 보이고 밤나무·담팔수·가막살나무·작살나무·딸기나무와 산수국도 조금씩 보인다.

북동쪽 봉우리에서 300여 m를 걸어가면 남서쪽 봉우리가 보인다. 남서쪽 봉우리는 높은 전파탑이 자리 잡고 있는데 철망 속에 전파탑이 넓게 자리 잡아서 전망대를 설치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옹색한 비탈에서 바라보니 남서쪽을 바라보니 서귀포 서쪽의 오롬군락 너머로 안덕면의 굴메(군산)·굴오롬(산방산)까지 환히 보인다.

서귀포 솔오롬의 어원에 대해 아직껏 여러 가지로 얘기 돼 왔다. 그러나 언제부터 이 오롬을 미악산(米岳山)이라 불렸는지 모르나 조선 후기로 추측된다. 그것은 제주목사 이원조가 1843년(헌종 9)에 기록한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는 바로 이웃한 영천오롬(靈泉岳·97m)이나 삼매봉(三梅陽岳·104m)은 기술하나 솔오롬(113m)은 기록하고 있지 않다.

어떤 이는 솔>살을 ‘피부’로, 어떤 이는 ‘솔’을 ‘살’의 고어 쏠>쌀이라 해 쌀미(米)자를 써서 ‘미악산(米岳山)’이라 불려졌다. 또한 전해지기는 산 모양이 쌀가마니를 쌓아 올린 형체라 해 쌀오롬이라 했고 이를 이조 말기에 한자로 등재한 이후에 그렇게 불려진 걸로 보인다.

그러나 제주어를 연구한 석주명도 ‘호ㅑ(한글로 ‘솔’)이라고 하며 “몽골식 지명인 듯하다”고 추론했다. (석주명은 1943년부터 2년 여 간 서귀포시 영천동 제주대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에서 제주의 나비·자연·방언·인문 분야 등 6권의 책 남겨 제주 연구에 유명하며 토평동 네거리에 기념흉상 건립 2005년, 석주명기념사업회를 창립 등 제주학연구에 중요한 인물이다)

필자는 솔오롬 어원을 몽골어 사전에서 찾아보며 깜짝 놀랐다. 몽골어로 정확이 ‘솔СУЛ’이 있었다. 몽골어 СУЛ(형용사)은 ‘묶지 않은, 잠그지 않은, 풀려 있는, 열려 있는, 빈, 꼼꼼하지 않은, 임자가 없는’이란 뜻이며, ‘약점’이라고 할 때 ‘솔-탈СУЛ-ТАЛ’, ‘ 빈방이라 할 때는 ‘솔우러~ сул өрөө’라 하였다(몽골어-한국어 사전).

제주오롬의 대가인 김종철은 그의 저서인 ‘오름 나그네’에서 이렇게 말한다. “서귀포시가 북쪽 벌판의 한라산 기슭 깊숙한 곳에 잔디와 세에 덮여 담황색으로 잔잔히 빛나는 자태가 가로누워 있다. 언제 어느 쪽에서 보아도 우아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오롬이다.”

오롬 가까이에는 오롬, 또는 오롬군락이 없다. 북쪽으로는 한라산 왕관릉 아래 오롬들과 천연림이 있다. 동쪽으로는 멀리 사려니 곶자왈 숲과 그 속에 솟아오른 오롬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또한, 서쪽으로는 한경-안덕 곶자왈 속에 오롬들이 있다.

이처럼 서귀포 솔오롬의 ‘솔’은 ‘위로는 한라산, 아래로는 서귀포까지 빈공간으로 주위에 어떤 오롬에도 묶이지(막히지) 않고 열려 있는 곳에 솟아 있는 오롬’인 것이다. 즉, 오롬은 동·서·남·북 어디도 막히지 않고 확 트인 비인 공간에 있어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오롬이다.

솔오롬은 해발 567.5m, 비고 113m로 한라산과 서귀포 바다 중간에 솟은 오롬이다. 고려말기 몽골인들은 당시에 주인 없이 농사짓지 않던 이 오롬 일대를 제주의 열 개 목마장 중에 제9 목마장에 편입시켜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100여 년 동안 제주에서 목마장을 운영하던 몽골은 고려가 새로이 대륙의 최강자로 등장한 명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게 된다.

명나라는 후금(몽골 후예가 세운 나라)을 치려고 제주목호들에게 “군마를 바치라!” 한다. 이에 목호들이 거절하고 제주목사 몇을 사살하자 고려와 명나라는 려명연합군(최영)을 함덕포·명월포로 상육시켜 법환포에 막숙을 치고 목호들을 추격하여 범섬까지 쫏아 일망타진한다. 오롬은 이처럼 제주 남쪽을 관할하기 딱 좋은 곳이라 제주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오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