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의 단풍 명소인 한라산국립공원 북쪽의 어리목코스는 어승생오롬 우편에 있다. 남쪽 영실코스는 볼래오롬 맞은편 영실오롬이며 동쪽의 제1 횡단도로 성판악 코스는 반널오롬 코스도 있다. 앞에 세 곳(북·동·남)은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곳이나 서쪽 코스는 관음사로 올라가는 코스이다. 그러나 ᄎᆞ낭오롬은 국립공원 지역이 아니다.
애월읍 광령리에 소재한 15개의 오롬 중에 14개 오롬은 모두 한라산국립공원 지역에 속한다. 그러나 오직 ᄎᆞ낭(천아)오롬만은 국립공원 지역에 속하지 않는다. 한라산 국립공원 지역인 광령리 산183, 산183-1, 산183-2번지에 속하는 오롬들이 14개이다. 그러나 천아오롬만은 광령리 182번지로 한라산 둘레길 코스에 들어 있으나 국립공원 지역으로 등재되지 않는다.
ᄎᆞ낭(천아)오롬의 행정구역은 애월읍으로 무수내(川) 건너편에 소재해 있다. 무수내는 어리목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무수내를 거쳐서 제주시와 애월읍을 경계 지으며 외도천으로 흘러내린다. 외도천은 제주 북쪽 지역으로 명월천과 함께 사철 물이 있는 곳이다. 제주도 대부분 하천이 건천인 데 비하여 무수내-외도천은 그만큼 내가 크고 수량이 많은 편이다.
관음사> 천왕사> 아흔아홉골> 제2 횡단도로 기점>에서 우(西)쪽 길은 한라산 둘레길인데 얼마 안 가서 무수내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길로 들어서도 ᄎᆞ낭오롬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단풍이 없었다면 시내 건너 작은 언덕인 갑산을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을에 불을 켠 듯 타오르는 단풍 빛에 그곳이 문득 ᄎᆞ낭오롬인 것을 보니 새삼스럽다.
ᄎᆞ낭오롬 가는 길은 한라산국립공원 동쪽 경계인 산록북로가 끝나고 산록서로로 들어선다. 산록서로는 천아오롬> 돌오롬>을 지나서 산록남로 기점인 거린사슴> 갯거리오롬으로 이어진다. ᄎᆞ낭오롬은 해발 797m이나 비고는 고작 87m에 지나지 않는 낮은 오롬이다. 그러나 이름뿐인 산록서로가 남조로처럼 확장-포장되고 무수내에 다리가 놓인다면 우리는 다시 옛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큰 바윗돌도 굴러놓을 만큼 한라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엄청난 힘이다. 무수내를 건너 잠깐 걷자면 바로 야자 매트로 이어지는 계단이다. 로프를 잡지 않으면 힘든 가파른 고갯길도 잠시, 고갯마루를 오르면 산길은 힘들지 않은 평탄한 길이다. “이렇게 단풍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어서 냇가를 그렇게 불태웠구나!”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가니 무수내 상류이다. 단풍 빛이 좋아서 바윗돌에 앉으니 아래로는 전봇대 하나나 될 듯 깊다. 무수내에서 물맞던 곳이 있다던데 이곳이 아마도 그곳일 듯싶다. 서귀포에서 물맞는 곳으로 이름난 돈내코는 이보다 더 넓은 지역으로 호수를 이룬다. 하지만 이곳 지역은 좁은데도 바짝 물이 말라 있다. 갈수기인 탓도 있지만, 제주도의 물 먹는 지질의 탓이 크다.
무수내에서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곳은 단풍나무 지대이다. 무수내 아래편에서 불타던 단풍 숲이 이곳이다. 무수천 상류 근처에는 철쭉과 영산홍도 조금 보이나 이곳도 예외 없이 산죽이 자리 잡고 있다. 조금 더 가니 키 큰 해송지대이다. 좌편으로 발길은 돌린다. 꽤 넓은 길이다. 여기서부터는 ᄎᆞ낭(참나무) 지대이다.
필자는 ᄎᆞ낭오롬을 오르며 두 가지 생각을 하며 걷고 있었다. 하나는 ‘단풍이 참 곱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ᄎᆞ낭오롬이라고 하는데 ᄎᆞ낭은 왜 보이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송지대를 지나면서부터 좌우로는 ᄎᆞ낭(참나무) 숲이다. 이제 막 단풍 드는 숲은 졸참나무 갈참나무 같은 상수리나무, 도토리나무 들이다.
숲은 곳곳에 푸른 해송이 삐죽삐죽하다. 김승태는 2001년에 한겨레신문에서 ‘희귀 지이류 송라, 제주에서 첫 발견’이란 기사를 소개한다. 송라는 소나무 겨우살이인 양치식물로 곰팡이류와 조류가 함께 도우며 살아가는 식물 덩어리로 두께 1~1.5m, 줄기는 평균 10~30cm이지만 100cm인 것들도 있다고 한다. 주황빛으로 물드는 참나무 아래로는 푸른 산죽이 빼곡해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그 중간지대에는 가끔 꽝꽝나무·꽤꽝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다.
ᄎᆞ낭오롬은 애월읍 광령리·한림읍 상대리에도 있다. ᄎᆞ낭은 제주도 오롬들, 특히 고도가 높은 오롬들에 흔한 수종이다. 그러나 ᄎᆞ낭오롬이 천아오롬으로 바꾸어 불린 것을 어떤 이는 풍수지리에서 천녀동공형(天女登空形)이라는 형국설에서 나왔다고 하나 잘못된 말이다. 어떤 이는 ᄎᆞ낭(ᄎᆞ남)이 ᄎᆞᆷ낭, 처낭, 처남이라고 불리는데 ‘천아’라는 이 명칭은 발음상 ‘ㅇ’ 또는 ‘ㅁ’이 탈락하면서 ‘차나, 처나>로 변한 것으로 보나 이 역시 잘못된 말이다.
이 오롬은 조선 시기에 한자로 등재할 때 천아악(天娥岳) 천아봉(天娥峰)이라고 불리며 천아(天娥)+오름이라고 불린 것이다. 제주에서는 한자+제주어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예로서 제주어 윤낭(때죽나무)을 한자어 종목(鐘木)의 종(한자어)+낭(제주어)으로 쓰이는 경우이다. 제주오롬 명칭의 잘못된 해설은 풍수지리설 또는 한자어로 해석하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 가을, 무수내 건너편 ᄎᆞ낭오롬 단풍을 바라보며 그 황홀함에 울컥하였다. 45년 전, 춥고 배고프던 시절 무수내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했지만 이렇게 황홀한 단풍일 줄은 차마도 몰랐다. 친구들이 지나는 말로 “이곳 ᄎᆞ낭오롬의 단풍은 제주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걸!” 그러나 차를 세내어 단풍 구경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던 서글픈 시절이 아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