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말라기 1장 12절)
성경을 읽지 않고 지내는 교인들이 적지 않은 듯합니다. 성경 읽기를 멀리하는 특별한 이유는, 읽을 때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가 거기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백성들의 불순함을 단호히 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에는 헌신(獻身)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거짓되게 헌신하고도 그들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 있을 줄로 생각했으니, 실로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거짓 믿음으로 사는 것은, 주님께 용납될 수 없는 불쌍한 태도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강력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말라기 예언의 결론은 희망적이었습니다.
일반서적을 대하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더욱이 성경 보기를 좋아할 리는 없겠지요. 성경은 우선, 딱딱하고 재미없어 보이며, 막상 읽다 보면 왠지 마음을 편치 않게 하는 내용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게 바로, 역설적인 말이지만, 성경의 본래 모습입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 성경 내용에서는 특별히 이렇다 할 만한 재미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 이에게는 요리나 여행 연예 등에 관한 만화나 소설 같은 책이 훨씬 재미있을 것입니다. 재미도 없는 데다 읽을수록 양심을 자극하니, 성경을 멀리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에 자극이 진행되어 변화가 생겨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인지라, 그 말씀 속에서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공경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고, 말라기는 문제를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적받고도, 언제 그랬느냐고 도리어 항변했습니다. 제사장들의 불의한 태도는, 여호와의 식탁을 경멸하는 불신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식탁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단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눈먼 것, 병든 것을 희생 제물로 드렸습니다. 말라기는 그 잘못을 지적하여,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리면, 그가 기뻐 받겠느냐?” 하며 책망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신약의 예배와 같습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따라,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는 정성의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람이 보아도 상대방의 거짓을 알 수가 있는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모르실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진실한 마음과 실행입니다. 핵심이 빠져있다면, 정교하고 화려한 의식도 가치가 없습니다. 명절 때 선물로 받은 과일 상자를 보면, 그런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상자의 겉은 필요 없이 지나치게 화려한데, 열어서 꺼낸 과일은 볼품없고 맛없고, 심지어는 상한 불량품일 경우입니다. 물건을 사서 보낸 사람은 정성스러운 마음뿐 아니라 적지 않은 돈을 지출했을 텐데, 내용물이 그 모양이니, 아까운 생각이 듭니다. 아쉽고 안타까운 점이 선물의 소중한 가치를 떨어뜨립니다. 사람끼리는 거짓을 말해도 웬만큼 통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허위와 거짓이 통할 리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그들에게 성전 문을 닫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의 때문에, 오히려 이방 민족들 가운데서 여호와의 이름이 드러날 것을, 말라기는 예언했습니다. 이 시대의 불의한 모습은 말라기 시대 이스라엘의 상황과도 일치합니다. 예배를 번거롭게 여기고, 비웃음거리로 생각합니다. 교인들의 식사 모임에는 참석하면서도, 예배 시간을 피하려고 합니다. 헌금이랍시고, 훔치고 거짓말하고 사기 치고 빼앗은 돈을 냅니다. 그런 것들은, 주님이 기뻐 받지 않으십니다. 예배를 무시하고, 무관심하며 참석조차 하지 않으면서, 돈을 낸다고 주님이 기뻐하실까요? 모든 불의한 자세는, 하나님 형벌의 대상입니다. 사람은 돈이 아쉬워서 받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믿음의 도를 알지 못하여 그릇 행하는 이들이여, 예수의 구원을 다시금 깨달아 신실한 믿음의 행위로 돌아섭시다.
한번 믿어 구원에 이른다는 교리에 집착하는 이들은, 자칫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믿다가 타락한 이들의 위험이 크다는, 히브리서의 말씀을 꼭 기억합시다. 진실과 실행이 없다면 그는 예수의 구원을 받은 자가 아닙니다. 주어진 기회에 올바로 서지 못하면,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실 이방인의 수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말라기의 지적을 받아들여, 허위와 거짓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믿음을 실행하며 살아갑시다.
(2023년 3월 5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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