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주의 디카시 오롬스토리

오롬 동쪽이 깊이 깎여 골짜기를 이룬 까끄레기오롬

쿠노Koonoh 2023. 7. 4. 17:17
뉴제주일보 승인 2023.06.29 18:44
까끄레기 정상에서 바라 본 서편의 오롬들.
 

제주도를 바다와 한라산을 중심으로 지역을 구분한다면 바다 근처의 해안마을, 한라산에 인접한 산간마을, 해안마을과 산간마을 중간의 중산간 마을이 있다. 조천읍의 해안마을에는 1곳, 중산간 마을에는 4곳, 산간마을 선흘리에는 8곳, 교래리에는 17곳의 오롬이 있다. 교래리의 오롬 숫자는 조천읍내의 오롬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많다.

그 중에 선흘리는 번영로(97번 도로)와 중산간동로(1136번 도로), 남조로(1118번 도로)에 접해 있고, 교래리에는 남북으로 남조로(1118번 도로), 동서로는 비자림로(1112번 도로)와 접하고 있다. 까끄레기오롬은 송당~대천동~교래리로 이어지는 비자림로 상에 있으며 비자림로에 접하고 있는 조천읍의 오롬은 까끄레기~산금부리~돔배오롬 등이 있다.

까끄레기는 조천읍 교래리 128번지에 있는데 해발(표고) 429m, 비고 49m 밖에 되지 않는 낮고 조그만 오롬이다. 구좌읍 송당~대천동에서 비자림로를 따라 교래리로 들어가는 쪽에서 보면 까끄레기 오롬은 타원형의 럭비공을 잘라 놓은 듯한 모습의 나지막한 오롬으로 오롬이라 부르기에는 귀여운 동네의 뒷산 정도로 보인다.

까끄레기는 서쪽 입구에서 동쪽으로 탐방로를 따라가면, 잠시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서는 ‘ㄱ’자로 꺾여 북쪽으로 둘레길을 따라 한 바퀴 돌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정상까지는 매트가 깔려서 동쪽→북쪽→서쪽→남쪽으로 둘레 길을 따라가면 산불감시초소에 이른다.

오롬 서남쪽 입구에서 까끄레기 비탈 정상에 올라 뒤돌아본다. 사려니숲 인근의 표선면에 속한 구두리오롬·가믄이오롬·붉은오롬·쳇망오롬 등이 보인다. 또한, 북쪽으로는 조천읍에 속한 오롬들도 보암직한 데 나무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서쪽을 향하여 보니 한라산 품을 향하여 나가는 듯 크고 작은 오롬 군락들이 맥을 타고 오른다.

산을 두개로 나누어버린 까끄래기 골짜기.

교래리는 한라산과 접하나 마을과는 거리가 멀다. 조선 시대 때 좌면은 구좌면과 신좌면(조천면)으로 나뉜다. 옛날 좌면의 가장 외진 산촌이라면 ‘도(ㄷ+아래아)리손당(교래송당)’이라 했었다. 필자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수영을 못하는 애들들에게는 “도리손당놈”이라 약 올렸었다.

돌(ㄷ+아래아+ㄹ), 도(ㄷ+아래아)리는 들판이란 말로 아래아가 사라지며 ‘다리’가 되고, 한자로 표기될 때 다리교(橋)자를 써서 ‘교래(橋來)’가 된 것이다. 교래는 ‘크고 작은 내(川)가 많고 다리가 많아서 ‘교래(橋來)’라는 말은 전혀 아니다. 교래리는 높은 지역으로 내(川)의 발원지이나 모두 건천(乾川)이고 상시 물이 흐르는 곳은 하나도 없다. 물론, 예전에는 다리도 없었고 그저 들판 중에 고립된 산촌이다.

김종철은 까끄레기를 “이름부터 아리송하다” 하면서도 농작물의 까끄래기(제주어 고(ㄱ+아래아)시락), 또는 제주어 동사 ‘고(ㄱ+아래아)꾸다’로 소나 말을 고(ㄱ+아래아)꾸다(목축하다)라는 동사의 변형으로 ‘고(ㄱ+아래아)끄레기’가 되었다고 해석하므로 이후 이를 텍스트 삼아서 ‘까끄레기’로 베껴 써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를 인정할 수 없기에 수차 탐방했으나 그 어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교래리에서 가장 오래된 터줏대감이라고 할 송씨(돔배오롬 참조)를 만나게 되었다. 필자는 그와 함께 둘레길을 도는 중에 동쪽 끝의 골짜기를 보며 설설기 었다. 비자림로를 오가며 까끄레기를 볼 때 “참 순하게 생겼다” 했더니 이렇게 깊은 골짜기가 있다니 송씨는 “이게 까끄레기 우다. 이렇게 깎여서 까끄레기엔 헌거우다.” 옳다! “이게 까끄레기구나!”

까끄레기 탐방로 입구는 서남쪽에 있는데, 입구에서부터 동북쪽의 산불감시초소까지는 야지매트가 깔렸는데 거기서부터는 샛길은 있으나 매트가 깔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매트가 깔린 곳까지는 시유지이고 그 북동쪽은 제주농대 실습지라고 한다. 그런 연유가 있었던 것이다.

산불초소 아래로는 굼부리가 있는데 굼부리 안에는 산죽이 가득 차 헤치고 지날 수 없을 정도다. 가까이 가보니 무릎까지 차오른 걸 보면 사오십 센티가 되어 보인다. 마침 굼부리 북쪽 편에 꽤 큰 산소(묘지)가 있는데 산소와 주변을 깨끗이 벌초하여서 그곳까지 갈 수 있었다. 산불초소에서 동으로 향하여 나가면 비좁은 샛길을 따라서 까끄레기 골짜기를 이른다.

골짜기는 굼부리에 차인 물이 낮은 곳을 따라 흐르며 깎이고 커져서 마치 오롬을 두 개처럼 갈라놓았다. 골짜기 건너편 언덕에는 교목 숲이 우뚝한 데 오른쪽으로 굼부리가 보인다. 비자림로에서 바라보면 까끄레기는 푸른 빛으로 울창한데 가까이 가보니 모두 삼나무 숲이다. 그러나 오롬 동편(골짜기 건너편)에는 곰솔을 비롯한 제주산 나무들이 가득하다.

산죽이 무릎위까지 차버린 까끄래기 굼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