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주의 디카시 오롬스토리

입 벌린 거미에게 물릴 것 같은 문새기오롬

쿠노Koonoh 2024. 9. 20. 21:08
삼다일보 승인 2024.09.12 18:27
 

문새기오롬은 송당리 산 254번지에 있다. 오롬의 높이는 해발 291.8m, 비고(실제 산 높이)는 67m이다. 서쪽 이웃의 당오롬 비고는 69m지만 동네 남쪽이나 북쪽 송당초등학교에서도 뚜렷하게 그 모습이 보이는 당오롬과 달리 문새기오롬은 높은 오롬들 속에 있어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문새기오롬은 동거미(115m) 자락과 북쪽 200~300m에 높은오롬(175m), 남쪽 500m 쯤의 개역이(백약이·132m), 서쪽 800m 쯤의 아부오름 사이에 숨어 있는 시골 비바리 같은데 몇 년째 ‘입산 금지’이다. 그 까닭은 순진하게 누워 있는 깊은 산속 비바리 가슴을 짓밟는 산악전동차 군단 때문이다.

몇 년째 입산금지 된 오롬은 언제 풀릴지 모르는 일이다. 산악전동차에 짓밟히기 전에는 높은오롬~동거미~문새기~개역이까지 오롬트래킹 코스로 알려진 곳이다. 필자는 몇 년 전 쓰다 둔 탐사기를 찾아서 읽던 중에 문새기오롬을 다시 탐사하고 오롬이야기도 마쳐야 하겠다 싶어서 외롭고 깊은 문새기를 찾는다.

혹시나 싶어 살펴보니 숨겨져 보이지 않는 ‘입산금지’ 플래카드가 보인다. 그래서 동서남북에서 외곽을 돌며 관찰하는데 이번 탐사에는 동서남북으로 주위를 돌며 촬영하고자 하였다. 중턱에 올라 내부를 촬영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이전에 탐사했던 기억을 되새기고 식생에 대해서는 외부 탐사를 대신 하기로 한다.

이번 탐사는 북쪽의 높은오롬 중턱에서 시작 한다. 길 없는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는데 넝쿨에 걸려 가시덩굴에 굴러 떨어져 고생하였다. 높은오롬 중턱에서 나오니 하얀 으아리꽃이 보인다. 가시에 굴러 떨어진 것도 잊어 버리고 향기에 취해 있는데 키 큰 나무들 속에 싸인 문새기가 눈앞에 떠 오른다.

높은오롬 동쪽으로 조금 더 나가면 동거미오롬이다. 200~300년전에는 잡초·더덕 밭이더니 지금은 잡초밭 너머 두 곳은 당근이 심겼고 당근밭 너머 잡초밭에서 문새기를 바라보니 오롬은 갈매기가 날개 편 것 같은 두 봉우리가 보인다. 동쪽으로는 동거미오롬 자락이고 샛길 하나를 두고 종달리와 송당리 경계이다.

푸석푸석 뜬 땅 너머 문새기오롬 북동쪽은 넓은 굼부리 같다. 잡초밭을 두르고 있는 곳과 문새기 경계를 가르는 것은 크게 줄지어 자란 삼나무와 편백나무들이다. 마치 “들어오지 마라!”는 듯 팔 벌린 키 큰 나무들 사이로 참식·생달·후박나무들이 보이고 그 사이에는 붉은빛 도는 하얀 구리장 꽃이 환하다.

동거미오롬 쪽을 돌아서 사잇길로 나가면 트래킹 하는 사람들이 이곳 문새기로 오를 수 있다. 산뽕나무·예덕나무는 푸르나 골짜기 습지에 양하잎은 누렇다. 당근밭이 푸석푸석할 만큼 날리니 시커먼 화산 흙이 그만큼 가물다는 표시다.

문새기오롬은 깊은 산 중이고 탐방로도 없다.몇 년 전 필자도 이곳으로 문새기오롬을 올랐었다. 산딸기·찔레·퀴카시(구지뽕)와 꽤꽝낭(가마귀쥐똥) 사이에 겨울에는 가마귀 쌀이 된다는 가막살나무도 보이고 예덕나무도 많이 보인다.

얼마쯤 올라 가면 이윽고 반반한 오롬 등성이에 이른다. 오롬 등성이에서 보면 이 오롬이 왜 ‘문새기’라고 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동쪽의 독거미가 무섭게 입 벌련 은 벌레 같은 오롬을 문생이여(물었는가 봐)!”라고 했을 것이다.

‘문 것 같다’라는 말의 명사형을 ‘문새기’라고 했을 거라는 게 필자의 견해다.

오롬등성이 중간은 동서로 긴 이랑을 내어 보리·유채나 콩·메밀을 심었다. 오롬 동북·서북쪽으로 골짝을 이루고 그 아래는 앞에 보던 삼나무·편백나무들이 사방을 둘렀다. 열린 서남쪽은 백약이로 와서 산악전동차들을 타던 곳이리라.

봄꽃이 피기 전, 달래 냉이를 캐고 고사리 꺾던 오롬, 산악전동차들만 금지하면 될 것을 동네 사람조차 가로 막은 금지된 오롬은 외롭다. 익숙한 개역이(백약이) 앞으로 나온다는 걸 놓쳐서 목장을 한참 돌아오는 석양길에 꺼병이 서너 마리가 앞질러 총총 피하는 고향 산길, 눈물을 삼키며 홀로 걷는 황혼 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