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미소오롬은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363번지에 있다. 오롬의 높이는 해발 374.8m, 비고 30m, 저경 486m, 오롬 면적은 160.093㎡이다. 세미소오롬은 한림읍에서 제일 높은 금악오롬(178m)과 두 번째 높은 정물오롬(151m) 사이에 있다. 금악오롬은 동북쪽에 정물오롬은 서북쪽에 있고 그 중간에는 이시돌 목장이 있는데 세미소오롬은 그 안에 자리잡고 있다.
이시돌목장은 6·25휴전과 4·3사건이 끝날쯤에 아이랜드 천주교 콜롬반선교회의 파송으로 제주도로 온 패트릭 제임스 멕크린지Mcglinchey(1928~2018) 신부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의 한국명은 임피제로 제주 농촌개발에 공로를 인정받아서 막사이사이상을 받았으며, 그가 소천(召天)하기 3년 전인 2015년에는 한국 정부가 그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한다.
세미소오롬의 탐방은 이시돌목장 피정의 집에서 시작된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예수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형상화한 조각들이 자리를 잡았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그 끝에는 길지 않은 오롬 둘레길이 있다. 세미소를 한 바퀴 돌면 임피제 신부가 묻혀 있는 묘지가 있는데, 거기서 내려오면 피정의 집 입구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 나오게 된다.
세미소오롬은 미로형 분화구를 이루고 있다. 서귀포 하논분화구는 논밭으로 쓰이고 김녕리 삿갓오롬 분화구는 논밭으로 쓰이고 조천읍 교래리의 방에 오롬도 목초밭으로 쓰이고 있느데 다른 미르형의 네 오롬들은 비슷한 모양을 가졌고 비슷하게 현재도 쓰이고 있다.
세미소오롬은 피정의 집을 출발하여 가는 중에 여러 종의 나무들이 보인다. 가시나무·참가시나무·개가시나무들이 꽤 보인다. 참빗살나무는 마름모꼴 푸른 열매를 달았고, 화살나무도 꽤 보인다. 가을이면 붉은 잎들이 예쁠 텐데 데 처서를 맞았지만 지금도 푸른 잎이다. 오롬 둘레길에 들어서니 키 큰 곰솔나무들 속에 둥근 잎 천선과·긴 잎 천선과·산목련도 꽤 보인다.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다는 불볕더위에 홍성준 씨와 동행하여 세미소오롬을 탐방한다. 이 오롬은 앞서 소개한 미르형 오롬들과 전혀 다른 점은 산상 분화구가 곧 세미소(泉)라는 점이다. 비 온 뒤라서인지 세미소는 흙탕물이다. 깊이가 궁금하였는데, 마침 그곳을 방문 중인 동내의 홍영훈씨를 만나서 물었더니 호수는 생각보다 얕아서 1m 아래인데 호수가 정리되기 전부터 보았는데, 샘이 솟고 자체적으로 물이 빠져 항상 그 정도 깊이가 유지된다고 한다.
마침 호수를 돌며 보는데 호수에는 연꽃·마름·부들·갈대도 없는 흑탕물이다. 그런데 세 마리의 오리가 보인다. 가만히 보니 집오리가 아닌 것 같아서 자세히 보니 제주도에서 겨울철새로 물가에서 겨울을 보내는 흰뺨검둥오리로 보인다. “어째서 겨울 철새인 흰뺨검둥오리인가?” 그렇다면 이 오리들은 제주 철새에서 텃새로 이곳에서 여름을 나는 것인지 궁금하다.
세미소오롬을 한 바퀴 돌아보니 호수의 주위는 400~500m쯤 되어 보인다. 마침 호수 북쪽으로 오솔길이 있어서 보니 ‘임피제 신부의 묘 700m’라는 푯말이 보여서 그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숲길을 조금 더 가니 임피제 신부의 묘가 있다. 숙연한 마음이 든다. 필자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나. 임신부를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제주도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같다.
박정희 대통령이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 당시 이시돌목장에서 생산하는 한림수직을 선물했다는 것은 유명하다. 그런데 양 떼는 보이지 않고 왜 돼지일까? 동행한 홍성준 씨가 말한다. 제주는 날씨가 춥지 않아서 양을 키우기에 합당치 않아서 돼지로 바꿔서 성공했다는 것이다.
돼지분양을 받은 제주 각지의 가정, 단체에서 키우기 시작한 돼지분양은 성공적이었다. 한림항이 오늘날 제주도에서 큰 항구로 성장하게 된 이면에는 이시돌목장과 주위에 분양받은 농가들의 돼지를 한림항구에서 세계 각지로 수출하게 되며 항구가 더 커지게 됐다고 한다.
세미소는 세미(泉)+소(沼·늪)+오롬이라는 세 단어의 합성어로 보인다. 이 중에 소(沼)는 명사로 ‘땅바닥이 둘러 빠지고 물이 깊게 된 곳’, 또는 ‘늪’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세미소의 소(沼)는 바위 웅덩이를 이루는 깊은 물이라는 의미로 담(潭·백록담)의 뜻과 비슷하다.
세미소오롬 일대는 임피제 신부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진 곳이다. 어떤 점에서 보면 헐값에 제주를 차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임피제 신부의 노고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더 빛이 난다. 비록 천주교라는 종교기관이지만, 제주인의 소득을 위해서 헌신했다는 점, 오롬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점, 오롬이 개방되어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