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주의 디카시 오롬스토리

절물오롬은 한자 대(大)+몽골어 나(НАР), 조선 때 단하악(丹霞岳)

쿠노Koonoh 2025. 3. 1. 11:21
삼다일보 승인 2025.02.27 18:18
소나오롬 정상에서 본 대나오롬.
 

절물오롬은 제주시 봉개동 산 78-1번지, 명림로 상에 있는 오롬으로 치장한 귀부인처럼 곱닥한(이쁜)하다. 이 오롬은 본디 고려시기에는 대나오롬이라고 불려졌다. 그러기에 절물큰오롬 족은오롬이라함은 틀린 말이고 대나오롬으로 불러져야 한다. 또한 조선조에 이르러 단하악(丹霞岳)이라고 처음 기록됐다. 이는 몽골어 대나오롬을 음차한 것이다. 서쪽의 한라생태숲은 제주~서귀포 간(제1횡단/5·16)도로 상에 있으며 동쪽은 무녜(봉개민)오롬과 마주 보고 있다.

제주산림조합 ‘제주의 오롬 368 봉우리 2013년 발행’, 제주도의 ‘제주의 오롬 1997년 발행’에서는 큰대나·족은대나오롬이라 표기했으나 그 어원은 아직까지 알려진 바 없다. 필자의 견해로는 고려 때부터 전해지기는 한자어 대(大)와 몽골어 나(НАР)의 결합으로 보인다. 몽골어 대나오롬의 나는 하늘과 신(神) 다음에 붙어서 복수의 뜻을 나타낸다, 또한 나란(НАРАН)은 해, 태양(太陽)이고 태양이 지다(~жаргах)라는 동사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제주목사 이원조가 쓴 ‘탐라지초본’은 단하악이라 했는데, 단(丹)은 붉다, 하(霞)는 노을하(霞)로 ‘멀다·아득하다’는 말이다. 조선 후기에는 단하를 해석해 답인악이라고도 했는데 ‘답(踏)’은 밟다·디디다·발판·신발이란 뜻이고 ‘인(印)’은 도장인(印)으로 ‘붉다’는 의미도 있다. 대나오롬은 ‘멀리 노을이 붉게 물든 오롬들을 바라보니 아득하다.’는 말이다.

또한 ‘사악(寺岳)’이라고도 했는데 “이 오롬 어디에 절이 있었는가?” 영천오롬·성불오롬에도 절은 없다. 제주시-불탑사, 서귀포-존자암은 복원됐으나 조선의 승유억불정책으로 이형상목사가 불당을 폐쇄할 때(320여 년 전) 사라졌으나 그 이름들이 전해진다. 절물오롬에도 남방불교의 절이 있었기에 ‘사악(寺岳)이라 전해졌다(현재 조개종 약수암은 1958년 창건되어 전혀 무관하다).

대나오롬은 ‘여름에 물을 맞으러 다녔다’고 전해진다. - 김종철 ‘오름 나그네’. 육지의 여름날 복달임은 시냇가 나무 아래서 쉬며 천렵(川獵)해 매운탕이나 어죽(魚粥)을 끓여 먹었다. 필자가 1979년에 대구에서 대학을 다닐 때도 청도운문천·청송계곡·영덕계곡·밀양강 등에서 천렵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천렵’이란 말도 없고 민물고기는 먹지도 않는다. 제주도의 복달임(복땜)은 물 맞고 닭죽을 끓여 먹는 게 가장 흔한 풍습이었다.

무녜오롬에서 본 소나오롬.

필자가 고등학생 때이다. 60세 넘는 세 분을 따라서 한라산기도원을 가던 길에 돈내코에서 물을 맞고 닭죽을 끓여 먹던 때를 생각해보니 벌써 50여 년 전 일이다. 육지와 달리 제주도에서는 검질매기(김매기)가 끝나면 물 맞고 닭죽 끓여 먹는 게 최고의 호사였다. 남쪽에는 물 맞는 곳이 많았으나 제주시 쪽에는 무수천과 절물 두 곳에서 물을 맞았다. 우리 인근 마을에서는 자연수가 없으니 인공으로 물을 끌어올려 물을 맞기도 하였다

‘절물’에도 여름에 물 맞으러 다닐 때는 수량이 적었던 건 아니다. 제주도 해안의 매립은 용천수가 사라져 버렸고 곳자왈은 지하 강을 타고 흐르는데 모세관현상으로 삼다수를 뽑으니 제주도내 용천수(천연수)들은 점차 사라져 간다. 그 옛날 백록담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었다. 물 좋았던 ‘절물’도 지금은 졸졸 흐르나 철철 흐르던 시절도 있었다.

입구 우측은 대나오롬으로 나가고 소나오롬은 왼쪽 ‘너나들이길’로 가다가 왼쪽에 오롬이 보이면 테크를 벗어나 100여 m 안 되는 곳(서쪽)에서 ‘소나오롬’으로 나갈 수 있다. 오롬에는 키 큰 때죽·산딸·섬단풍·고로쇠 등의 낙엽수들과 노가리·비자나무 속에 푸른 줄사철과 잎이 진 다래나무가 나목을 타고 오른다. 산죽·작살·구럼패기(산상)·꽤꽝(가마귀쥐똥)나무 등의 소교목들이 중간층을 이룬다. 여름에는 물봉선들이 가득하나 자금우·천냥금은 보이지 않는다.

대나오름 정상 전망대에 서면 제주시 일대가 환히 내려다 보인다. 화창한 날, 한라산 정상까지 환히 보인다. 동쪽 전망대에서는 굼부리가 움푹하게 파였고 밀림을 이루었다. 소나오롬은 가시덤불에 쌓여서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2025년 입춘을 지났으나 50년 만에 큰 눈이 내렸다. 필자는 박영식씨와 함께 소나오롬 정상까지 탐사했다. 소나오롬 정상에 서니 눈 아래 민오롬부터 조천읍 바농오롬·지그리오롬이 나목(裸木)들 사이에 보인다.

이른 봄 대나오롬 눈 속에 복수초들이 노랗게 피어나면 제주시에도 봄이 온다. 제주의 봄이 무르익을 즈음에는 새우란 무리들이 피어나고 산벗나무에 꽃망울이 조랑조랑 열릴 때쯤이면 대나오롬의 봄은 절정을 이룬다. 대나오롬에서 소나오롬으로 나가는 숲 길에서 봄노래를 불러보자. 산 머 조붓한 오솔길에 살짜기 봄 아가씨들이 고개를 내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