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요한계시록 21장 1절)
한 해가 가고, 다시 새로운 해가 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해가 바뀌면 사람들은 계획도 결심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연말에는, 별로 한 게 없었다고 후회하곤 합니다. 노력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해 아래에 새 것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인생은 여전히 회한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이 정말로 새롭게 변화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요? 그에 대한 답을 얻은 사람은 새해 첫날이 아닌 언제라도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본문은 그곳을 보여줄 뿐 아니라, 거기에 거할 방법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는 천년왕국에 대한 것과 대 심판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년왕국 기간에는 사탄이 결박되어 무저갱에 갇혀 활동하지 못하다가, 천년 후에 잠시 놓여나 세상을 어지럽게 합니다. 결국 사탄의 무리인 마귀와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은 영원한 고통에 던져지고 맙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심판을 받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고 기록된 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됩니다. 자기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거기 들어가거나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 1:9~10에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고, 전도자는 단언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지혜가 번뇌를 만들고 지식이 근심을 더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연말의 회한과 새해의 결심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서의 결론이 영적인 각성과 하나님 경외의 희망이듯이, 하나님이 주신 새해는 다시금 시작되는 새 희망의 발판이고 기회입니다. 지난 날 잘못했다면 앞날에 잘하도록 결심 노력하면 됩니다. 바꾸어 말해서, 잘못한 과거 때문에 좌절하고 낙담하면 발전할 기회를 다시는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가지는 희망은 그 정도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언제라도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물리적인 형태의 변화, 화학적 작용에 따른 변화 같은 것은 얼마든지 나타납니다. 그런 변화를 위한 연구로 인류의 삶이 편리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연구에 공헌한 사람들에게는 노벨 물리학상 같은 것도 주어집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와 반비례로 증오와 싸움의 파멸을 향해 나아가고, 자연환경은 메마르고 병들어 더욱 열악해져갑니다. 물질적으로는 희망인데 반하여 영적으로는 새로움과 발전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는 한, 세상은 언제까지라도 변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상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은 언제인지 우리가 명백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만으로 그 때를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천년왕국이 지나야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텐데, 천년왕국을 두고서 전천년설, 후천년설, 또는 무천년설 등으로 사람마다 이론이 분분합니다. 그에 대하여 단정할 만한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문제를 접어두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이 어떠할지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믿음으로 성실히 행하도록 합시다. 세상이 아무리 요란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한, 그 사람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한밤중에 예수의 재림이 있더라도 믿음으로 준비된 이에게는 절대로 위급하지 않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언제라도 새로운 세계를 보고 거기에 머물러 살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역사적으로 도래할 천국과 영적 내재의 하나님 나라가 모두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차지해야 할 천국은, 그 두 가지가 합쳐진 것입니다. 前者에 장차 들어가려면 後者를 먼저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하는 사람은, 슬픔과 고통을 잊고 생명수를 마시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둘째 사망의 영원한 불 못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원한 새 예루살렘의 영화를 누립니다.
(2020년 1월 5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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