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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쿠노Koonoh 2022. 3. 6. 16:21

그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사야 3734)

 

히스기야는 유다의 열세 번째 왕이었습니다. 그가 통치했던 기원전 728~687년의 유다 왕국은 종교적으로 매우 타락했고, 앗수르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살만에셀에 의하여 이미(BC722) 멸망하였으므로, 유다는 더욱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히스기야 왕을 독려하심으로, 유다가 위기를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히스기야가 다른 왕들에 비하여 나은 정치를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이사야 선지자의 협력 때문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룬 정치의 두드러진 성과는 성전 수리와 종교개혁이었습니다. 그는 우상의 제단을 철거하였고, 그동안 행하지 못해왔던 유월절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국토의 회복과 안정을 위해 블레셋을 정복하였고 앗수르의 침공을 저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산헤립의 1차 공격은 히스기야의 불신앙적 타협으로 저지되었습니다. 그때 성전과 궁전의 금은을 긁어모아 산헤립에게 바쳐야 했습니다. 그로써 앗수르가 물러갔으나 유다는 혼란과 좌절에 빠졌고, 완전한 항복을 요구하는 앗수르의 2차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예루살렘 성에 수로를 건설함으로써 적을 방어하고 백성들을 보호하였습니다. 나중에 그는 죽을병이 들었으나, 하나님께 간구하여 15년의 생명을 연장받았습니다. 1차 공격 때에 저지른 히스기야의 실수는 장차 유다의 멸망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앗수르의 공격은 집요하고도 야비하였으므로, 작은 나라 유다가 큰 나라의 공격을 물리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작 문제가 된 것은, 세력의 대소가 아니라 히스기야가 보였던 대비 자세 때문이었습니다. 앗수르의 거대한 연합 세력과 랍사게의 궤변적 독설이 유다 백성의 마음을 불안하고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1차 침공 때, 위기를 벗어나고자 히스기야 왕이 불신앙적인 유화책을 선택하였던 것은 커다란 잘못이었습니다. 불신앙의 방법은 일시적으로 유익을 가져올 수 있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리는 방법에는 무력도 있거니와 그럴싸한 달콤한 말로 파고드는 속임수도 있습니다. 랍사게는 유다 백성에게 앗수르에 항복하면 생활 안정과 평화를 이룰 것이라고 선전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를 가리켜 무기력한 왕이라고 백성을 선동하였습니다.

어떤 위기라도 그것을 벗어나려면, 믿음으로 하나님을 굳게 의지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1차 침공 때와 달리, 하나님을 강하게 의지하였습니다. 그리고 랍사게의 미혹에 침묵하도록 유다 백성에게 지시하였습니다. 삶에 난관이 닥칠 때는, 주 예수의 이름을 붙잡고 기도할 것이며, 당장 해결책이 보이지 않더라도 침묵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때가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모독을 들었을 때 히스기야는 통분했지만, 그래도 참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렸습니다. 통회(痛悔) 자복(自服)과 인내의 믿음이 우리에게도 꼭 필요합니다. 예수 안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만 있다면 어려움은 반드시 해결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해결책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가 오던 길로 돌아가리라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에는 도저히 해결될 듯하지 않은 막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상황이라도 주님께는 막힘이 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하실진대, 어떤 통로라도 열리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란 그런 것입니다. 앞에 놓인 홍해에 길이 생겼듯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그가 곧 태초에 계셨던 창조의 로고스 그리스도입니다. 산헤립은 유다를 멸망시키려 했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악을 도모한 산헤립의 생명을 거두어가셨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심은, 예루살렘의 보존으로 장차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 인생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02236,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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