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나가는 한라산 제1횡단도로>관음사 쪽으로 좌회전하면 산록북로에 인접한 궷물오롬을 만난다. 입구에 큰 표지석이 있고 바로 주차장이다. 소재지는 애월읍 장전리 산136-1번지며 표고 597m, 비고 57m인 오롬이다. ‘오롬 기슭에 궤(동굴)에서 샘물이 나와 궷물’이라는 말은 전혀 근거 없는 말이라서 여기서 그 근원을 밝힌다.
아직까지 궷물오롬은 제주어로 바위굴을 이르는 궤(괴)+물의 합성어로 ‘바위굴에서 솟아나는 물’을 이르며, 猫水는 ‘궤물’의 한자 차용표기로 중세국어에서 고양이를 일컫는 말로 제주어 궷물의 ‘궤’와 음이 같은 궤(고양이/猫)+水(물)의 합성어로 불려진다는 것이 이제껏 전해진 말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필자는 그 근거를 소개한다.
구좌읍 세화항구로 나가는 언덕 아래 지금은 매립돼 사라졌지만 ‘고냉이물’이 있었다, 이 물은 언덕 아래 있었는데 바닷물이 빠져나간 썰물 때뿐 아니라 조간대 조금 위에 있어서 밀물 때에도 해변의 다른 용천수들이 바닷물에 잠겨도 ‘고냉이물’은 언덕 아래서 흘러내려 밀물 때에도 동내 아낙네들이 그물을 이용했던 것을 기억한다.
구좌읍 한동리 지명은 ‘괴(괘/궤)리’라고 했는데 앞서 둔지오롬을 소개할 때 궤(ГҮВЭЭ2)는 몽골어로 ‘뚝, 언덕’이며 고려 때 목마장(長)으로 몽골서 온 좌형소(左亨蘇)의 아들 좌자이(左自以)가 궤리(한동리)를 최초로 설촌하고 ‘좌가장(場)’이라는 목장도 만든다. 그러나 ‘목호의 란’에 연루되며 한경면으로 피신했다가 여명연합군 최영장군 휘하들에게 죽임 당한다.
애월읍 장전리의 궷물은 고인 물이나 바위굴 물이 아니라 ‘오롬 언덕 아래 있는 물’이요, ‘뚝을 쌓아 인위적으로 만든 물일 수도 있다. 궷물오롬의 궷물은 ’오롬 굼부리 언덕 아래 물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궷물을 찾았봤으나 작은 바윗돌이 있을 뿐 잡초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떤 이는 그곳에 물을 찾아 찍은 사진을 본 적도 있으나 갈수기에는 대부분 말라 있다.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은 19세기 중반 이원조의 저서로 ‘산천(山川)’ 조에 표기된 제주오롬들을 순서대로 보면 82개 중에 제주목 43개, 정의군 24개, 대정현 15개가 기록돼 있다. 이원조(李源祚/1792~1872)는 1841년(헌종 7) 강릉 부사로 있던 중 구재룡(具載龍)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해 1843년(헌종 9) 6월까지 재임했다. 이원조는 재임 시 ‘탐라록(耽羅錄)’·‘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탐영관보록(耽營關報錄)’·‘탐라계록(耽營啓錄)’ 등 제주도 관련된 서적들을 많이 저술했다. 어떤 이는 이 오롬을 한자로 묘수악(猫水岳)·괴수악(怪水岳)이라고 한다는데 이원조가 최초로 제주오롬을 탐라지초본 산천조에도 등재되지 않았다.
이 지경은 애월읍 공동목장 지경들로 테우리(목동)들은 상류에 식수 터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궷물오롬은 중잣성 지경이고 그 위로 노꼬메큰오롬과 족은오롬 자락을 경계로 중잣성을 경계 짓는 곳이다. 이 오롬 중턱에는 테우리 막사를 재현시켜 놓은 곳도 있다. 그 안에는 돌담으로 쌓여서 비를 피하거나 밤을 새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테두리에 관한 또 하나는 백중 제단이다. 백중은 음력 7월 15일로 백종(百種)·중원(中元)·망혼일(亡魂日)·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 했다. 우란분절(盂蘭盆節)의 ‘우란(Улаан)’은 몽골어로 빨강이며+호우터(хот)는 도시이다. 우란하오터(Улаан хот)는 내몽골자치구 성도이다. 우란분절의 ‘분(盆)’은 고대 중국의 입이 바깥쪽으로 젖혀진 얕은 그릇인데 청동제는 춘추·전국시대 한 쌍의 귀가 달리고, 입의 상단부에 약간 오므라져 물이나 희생의 피를 담는 예기(禮器)이다.
불교·도교·민간풍속·샤머니즘에서 모두 이날을 명절(祝祭)로 지키는데 아마도 불교>라마불교>몽골 제례로 전해진 것으로 본다. 제주의 몽골총관부(부장:다루치)가 왕메(대왕산:성산읍 수산리)에 주재하면서 우란분절(백중)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빨강/붉다’라는 짐승(특히 말)의 피를 분(잔盞)에 부어 희생 제사를 드린 것으로 보인다.
백중제는 산야에서 드려졌으며 세화에도 제석동산이라는 지명은 있으나 제단은 아직 찾지 못했다. 백중 때 테우리(목동)들은 목축의 번성을 위해 제사를 지낸다. 어떤 이는 백중이란 목동이 있었고 그와 옥황상제에 관한 설화를 말하나 필자는 아직껏 백중이란 테우리가 있었다는 말은 들은 바 없다. 고려시기 몽고 말이 들어오며 백중은 테우리들의 명절로 전해져왔다.
산죽들이 굼부리로 언덕길로 인도한다. 북동쪽으로 열린 굼부리에는 나무들이 가득해 보이지 않는다. 남쪽의 우뚝한 노꼬메 큰 오름·족은 오름이 제주오롬의 아름다움을 더하게 한다. 오름 서북쪽을 돌아서 남동쪽으로 돌아보니 곰솔 나무들이 창창하다. 굼부리로 들어가려 하나 잡목과 가시덤불이 길을 막는데 노꼬메로 가는 길은 야자메트가 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