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설교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쿠노Koonoh 2023. 4. 2. 14:02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창세기 184)

 

고난과 부활에 이르기에 앞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많은 사람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했습니다. 환영의 분위기가 어느새 사라지고, 예수님의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환영과 고난, 그리고 부활의 승리와 영광이 연속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본문에는, 세 천사를 맞이한 아브라함, 아들을 낳을 것이란 말에 허탈한 웃음을 짓는 사라,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신 여호와, 이 세 가지 내용이 나옵니다. 부활을 앞둔, 환영과 고난의 과정이 주는 의미를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음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가볍게 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한편 이해가 되면서도 슬픈 마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이천여 년 전의 예루살렘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마찬가지 느낌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보인 모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천사를,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했습니다.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의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선을 행하지 못하지만, 성령의 빛을 따르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라고(16:7~8)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와 성령을 즐거이 맞아들입시다.

 

그런데, 환영에 이어진 수난(受難)이라니, 참으로 모순되고도 비극적인 상황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게 도리어 세상살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흔히, 인심은 조석변이(朝夕變異)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하듯이 변덕스럽다라는 뜻입니다. 요즘 우리는, 정치인들을 통해서 그런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의리나 지조가 없이 상황과 이해타산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자들의 태도에, 그만 진력을 느끼곤 합니다. 좀 지긋한 심지와 의리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두가 대체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은, 바로 엊그저께 예수를 환영했던 그들에게서 시작되었으니, 그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아브라함은, 세 명으로 나타난 천사들을 환영하고 성심껏 대접하였습니다. 그들은 식사한 후에, “내년 이맘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라고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당시의 아브라함은 99세였고 사라는 89세로서, 이미 노쇠한 나이였습니다. 누가 듣더라도 천사의 말은 황당하게 들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듣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오”, 이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천사들을 환영하여 극진히 대접한 아브라함과 사라의 태도는 틀림없이 훌륭한 것임에도, 아들을 낳을 것이란 말을 그들이 선뜻 받아들이지는 못했습니다. 인심이 후한 사람들은 많아도, 신앙 의지가 분명한 사람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라의 부정하는 마음을 지적하시며,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스스로 찾고 따르지 못합니다. 로마서 310절과 11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라고, 바울은 기록했습니다. 다윗 왕도 바울 사도도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면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음은, 사람이 선을 행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지 못할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그러한 부정적 정체를 모르는 한,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 다님으로써 조금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믿음의 목적은 아닙니다.

 

환영하는 것도 고난을 받는 것도, 모두 부활로 향하는 과정(過程)입니다.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영접함으로써, 아들 낳을 약속을 들었습니다. 믿음 없는 마음이었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노년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철없이 교회를 드나든 것도, 주님의 은혜와 섭리로 인함이었습니다. 믿음 없는 방황의 시절을 보냈어도, 예수의 권능으로 부활 생명의 새로운 인생이 만들어집니다. 당장 확신이 없더라도, 심령에 주님을 모시는 사람이 됩시다.

 

(202342,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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